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69

산골에 찾아온 봄, 매화꽃 사이로 지는 석양 (2008.04.14)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마당에 심은 벚꽃과 매화가 피어나고 쑥과 구절초, 산나물들이 힘차게 솟구치며 올라온다. 땅 만들기, 고랑 만들기, 퇴비 뿌리기, 이것저것 파종하기 등 초봄 농사일들을 하나둘씩 해 나가고 있다. 4년 째 농사를 짓다보니 기계 다루는 일, 이것저것 밭 준비하는 일 등 농사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지나가다 기계 다루는 것 보고 아는 형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자네 완전 선수 다 됐구먼”하고... 요즘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일은 농사일이 아니라 가족회원을 모집하는 일이다. 밭에서 일하다 전화 받고 집으로 들어와야 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메일 확인하고 답장 보내고, 회원 종류가 세분화되는 바람에 이것저것 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여간 힘들지 않다. 삽질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가..

돼지감자 캐고, 꽃구경 가다! (2008.04.07)

작년에 마을 밖에서 빌려 농사짓던 밭 주변에 야생 돼지감자 군락지가 있어 언젠가 캐야지 하고 눈여겨보고 있던 터였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날 잡고 이웃과 함께 돼지감자 캐기에 나섰다. 당뇨에 특효라고 소문이 나 요즘 약용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먹어본 적은 고사하고 직접 본 적도 없었는데, 캐놓고 보니 생강이랑 똑닮았다. 울퉁불퉁 못생긴 게 돼지감자의 또 다른 이름인 ‘뚱딴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야생 돼지감자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양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가지고 와서 맛을 보니 밍밍한 듯 하면서도 아삭아삭한 것이 제법 맛이 있다(흙만 씻어내고 생으로 먹었다). 무와 생고구마와 야콘을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족회원 첫 모둠농산물 발송 때 맛보기로 몇 ..

농사지으며 가장 행복한 순간! (2008.03.27)

싹이 올라왔다. 이제 4년차 농부지만 아직도 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씨를 묻고 며칠 지나면 지진이 나듯 흙이 들썩들썩 갈라지고,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떡잎이 고개를 내민다. 그 조그만 씨앗 하나에 이런 생명력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볼수록 신기하고, 이쁘고, 감사하다. 새싹이 올라오고 있건만 아직도 시시때때로 눈발이 휘날린다. 보온덮개로 꽁꽁 싸매어놓긴 했지만, 기온이 영하로 뚝뚝 떨어지는 밤이면 고 어린 새싹들이 얼마나 추울까. 아랫마을의 한 이웃은 며칠 전 갑자기 추워지던 날 덮개를 늦게 씌워주는 바람에 한 달 넘게 어렵사리 키운 고추 모종 1,500주를 한 주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버렸다고 한다. 여러 가지 채소 모종들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는 동안, 우리는 거름 ..

시골에서 물건 사기 2탄! (2008.03.22)

시골이라서 쇼핑 생활이 무조건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는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도시에선 맛보기 힘든.귀농해서 처음 장수에 내려왔을 때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농기구들을 사느라 철물점이니 농약사니 농자재창고 같은 상점에 자주 갔었는데, “OO 주세요.”하면 100이면 100 되묻는 말이 “어디서 왔어요?”였다. 손바닥처럼 빤한 동네다 보니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은 일단 경계대상이 되는 것이다.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이 지역 사람이 아닌 걸로 판명하면 부르는 가격도 조금씩 높아진다. 귀농 4년차로 접어든 지금은 철물점이나 농약사 등의 단골상점에 ‘형님’들이 여럿 생겼다. 일단 믿을 수 있을 만한 지역 사람으로 인정받고 나면, 단순한 상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라..

봄 작물 씨앗 넣다 (2008.03.15)

지독한 감기로 며칠을 앓았다. 지난 월요일부터 감기 기운이 도는 것을 그냥 괜찮겠지, 방심하고 며칠 동안 밭 정리와 하우스 정비 등 급한 일들을 계속 해나가다 보니 목요일 아침에 몸 상태가 최악이 됐다. 열은 펄펄 끓고, 편도선은 퉁퉁 부은 데다 기침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틀 동안 집에서 잠만 잤다. 병원에 가는 대신 알고 있는 민간요법들은 다 동원했다. 생강과 칡 끓여 먹기, 이불 뒤집어쓰고 각탕하기, 프로폴리스 물에 타서 마시기, 오미자 달여 마시기, 고춧가루 팍팍 넣은 콩나물국 마시기 등등... 마지막 비법으로 큰맘 먹고 사온 한우 반근에 무를 썰어 넣고 고깃국을 끓여 먹고 나니 몸에서 한결 힘이 솟았다(실은 푹 쉬고 나을 때가 돼서 나은 것!). 오랜만에 밖에 나가 맑은 ..

시골에서 물건 사기 (2008.03.10)

시골에선 농사 짓는 데 들어가는 영농자금 말고는 돈 쓸 일이 별로 많지 않다.식재료는 거의 다 밭에서 해결하고(내가 키우지 않는 것들은 옆집, 아랫집, 윗집, 건넌마을집 등등에서 부지런히 갖다주며, 우리 또한 부지런히 갖다 돌린다), 옷은 패션이나 유행과는 담 쌓고 사는 곳인 만큼, 도시에서 입던 옷들만으로 평생 입고도 남는다. 변변한 유흥업소도 카페도 없으니 사람 만날 일이 있으면 서로의 집에서 만난다. 하지만 가끔씩 맘 먹고 뭔가 사려 하면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지금에야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시골살이에 익숙하지 않던 처음엔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어느 날 문득 크로와상이 먹고 싶어 읍내에서 가장 큰 빵집에 가 "크로와상 있어요?" 했더니 빵집 주인이 되물어보..

이웃들이 변했어요! (2008.03.07)

늘 보던 이웃들을 석 달 만에 만나니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득이다. 그 동안 어찌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석 달치를 다 듣는 데만 해도 며칠밤은 걸릴 것 같다. 굵직굵직한 일들만 따져봐도 그동안 마을 대표가 바뀌었고, 정답게 지내던 아랫집 선길이네가 아쉽게도 이사를 갔으며, 비어있던 아랫말 집에는 광주에서 새 이웃이 이사해왔다. 어버버거리던 윗집 막내가 한 해를 넘기더니 말솜씨가 갑자기 늘어 “삼촌, 안녕하세요?”하고 똑부러지게 인사를 해와 우리를 놀래키는가 하면, 마을에 중학생이 3명으로 늘어났다. 안 좋은 일로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던 마을 아줌마 한 분이 올 겨울에 그만 허리에 큰 탈이 나 병원에 입원하고 쇠심까지 넣었다고 한다. 겨울 동안 매일 밤참을 즐긴 탓에 곰처럼 피둥피둥 살이 오른 사람이 있..

집에 돌아오다 (2008.03.01)

석 달 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장수로 돌아오는 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풀린다는 기상예보만 믿고 넉넉하게 날짜를 잡았건만, 뭔가 심상치 않았다. 역시나 낮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강추위, 몸도 마음도 꽝꽝 얼어 버리는 것 같았다. 장수에 돌아오자마자 폭설이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동파를 대비해 빼 놓았던 물을 연결하고, 보일러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작년에 한번 해봤다고 여유만만하게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장수의 이번 겨울은 유독 추웠나 보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2월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수도 중간 밸브를 열어야 하는데, 땅이 얼어서 곡괭이질도 삽질도 되지 않는다. 땀을 뻘..

2007년 농사 마무리, 겨울 여행길에 나서다! (2007.11.12)

2007년 농사를 마무리했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정리 작업이 무려 2주가 걸렸다. 11월1일부터 쉬지 않고 밭정리를 했다. 긴 가을 장마로 잘 못 자란 양상추와 배추, 무를 뽑아내고, 비닐을 걷고, 부직포를 정리했다. 하우스 비닐도 벗겨내고 내년 농사를 위해 밭에 왕겨를 뿌리고 로터리를 쳤다. 오늘 여기저기서 모아온 나무를 잘라 정리해놓는 일까지 마치면서 올해 장수에서 할 일은 다 끝냈다. 마무리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겨울 내내 일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 한해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 때문에 농사짓기 어려웠지만 두 해 째 운영한 가족회원제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됐다. 물론 농사가 잘 안 된 작물도 있었고 이래저래 부족한 게 많았지만, 작년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작물을 발송했고..

생쥐와 한판 대결! (2007.11.01)

겨울이 시작됐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데 걸어다니기 싫을 정도다. 지난 며칠 동안은 운이 좋아서 간벌 작업 후 버려 둔 나무들을 발견해 트럭으로 수 차례 왔다갔다하며 주워 왔다. 집 뒤켠에 나무를 잘라 차곡차곡 쌓아 놓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제 양상추와 배추를 남겨놓고 모든 농작물 추수가 끝났다. 가족회원 농산물 발송도 마무리했다. 이제 1주일 정도 밭 정리와 내년 농사를 위한 땅 만들기 작업만 하면 올해 농사도 완전히 정리된다. 이것저것 홀가분하게 정리하던 차에 조그만 생쥐 때문에 느닷없는 한 판 소동이 벌어졌다. 집에 큰 틈이 나 있었다. 저녁에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벽에서 무언가 기척이 났다.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