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69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2008.08.03)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부었다. 오전 내내 집에서 올해 마지막으로 넣을 가을 작물 심을 곳과 시기에 대해서 계획을 세웠다. 비가 그치고 물이 어느 정도 빠진 듯 하여 장터에 가서 이것저것 씨를 사 가지고 와서 파종을 했다. 모종 키울 하우스에 풀이 많이 자랐기에 낫을 들고 구석구석 풀을 뽑고 있는데, 갑자기 땅벌들이 날아오른다. 소리지를 사이도 없이 볼에 딱 한 방을 쏘였다. 조금 따끔하여 집에 들어와 약을 바르고 계속 일을 했다. 시골에 온 후 벌에 몇 번 쏘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계속 밭에서 풀 뽑기 작업을 하는데 온 몸이 가렵다. 대낮부터 모기들이 달려드나 하고 계속 일을 하는데 가려움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 팔을 들춰보니 이미 두드러기가 심하..

시골집에 무슨 선물 들고 갈까? (2008.07.28)

귀농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보니 도시에서 놀러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 형제, 친척, 친구, 옛 직장 동료들... 1년 내내 손님 안 오는 달이 없지만, 연휴가 낀 주말이라거나 요즘 같은 휴가철엔 저녁마다 온 동네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곤 한다. 반가운 얼굴을 찾아 먼 길 달려 이곳까지 내려오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그냥 올 리가 없다. 손님들은 도시에서 떠나기 전 길 찾아오는 법 설명을 한참 들은 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근데 뭐 필요한 거 없어?” 편한 친구들인 경우 “와인이나 한 병 사다 주던가.”, “달달한 던킨 도너츠가 먹고 싶네.” 등등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이곳에선 구할 수 없는 ‘도시 물건’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필요한 것 없으니까..

야생동물들과 함께 한 하루 (2008.07.14)

지난 주말부터 날이 흐리고 비가 내리면서 폭염이 한풀 꺾였다. 해가 쨍쨍 떴다가 소나기가 퍼붓다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하늘이 변덕을 부리기는 하지만 일하기 나쁘진 않다. 오늘 아침엔 토마토와 오이를 수확하러 산 입구에 있는 하우스에 들어가려는데, 뭔가 휙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철렁했다. 뱀을 그동안 많이 봐서 어지간한 놈은 장화 신은 발로 들어 던지기까지 하는데, 이 뱀은 정말 크다. 머리도 삼각형으로 뾰족한 것이 독사인 것 같다. 이놈이 혀를 낼름낼름 내밀더니 하필이면 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냥 두면 큰일나겠다 싶어 긴 막대기를 가지고 올라와 보니 토마토와 고추를 오가며 이리저리 설치고 다닌다. 한참 따라다니며 잡으려다 그만 놓쳤다. 할 수 없이 그냥 하우스 안에서 일하는데 살짝 등골..

매미만 신바람 났다, 땀 줄줄 흐르는 폭염 (2008.07.08)

오늘 낮에 가을 수확용 늦옥수수를 심었다. 겨우 한 고랑 심는 거라 2~30분이면 되겠지 하고 심기 시작했는데, 10초도 지나지 않아 땀이 줄줄줄 흘렀다. 정말 ‘줄줄줄’이다. 사람 몸에서 이렇게까지 땀이 흘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머리도 어질어질 핑핑 돌기 시작한다. 평상시 같으면 오기로라도 끝까지 옥수수를 심었을 텐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날씨를 우습게 보고 덤빈 것을 후회하고 얼른 집으로 피신했다. 점심을 먹으며 인터넷 뉴스를 보니 국토대장정을 하던 대학생 한 명이 폭염에 행진하다 사망했단다. 겁이 살짝 났다. 아이고, ‘더위 그까이것’ 했다간 큰일나겠구나. 백화골에도 폭염이 찾아왔다. 1년에 1~2주 밖에 안 되는 ‘한여름다운 한여름’이 바로 지금이다. 며칠 전 드디어 솜이불을 정리해 이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2008.07.05)

시골에는 회장님이 많다. 길거리에서 “회장님!”하고 부르면 적어도 10명은 뒤를 돌아볼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스무 명은 넘는다. 왜 이렇게 회장님들이 많을까.농민회 면 지회 모임에만 나가도 모이는 회원 10여명 중에 회장님이 4분이다. 두 분은 예전 회장님, 한 분은 현재 회장님, 나머지 한 분은 한달 정도 군 농민회 임시 회장을 지낸 회장님... 그리고 한 번 회장님은 영원한 회장님이라 이렇게 회장님이 계속 늘어간다.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직책이 높아진다. 평사원에서 대리, 과장, 팀장, 부장, 이사 등등... 한국처럼 호칭에 민감한 상황에서 나이든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직책으로 불러주면 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봄 채소 수확 끝내고 여름 작물 심다 (2008.07.01)

6월이 가고 7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해발 550m 고랭지의 혜택을 톡톡히 맛보는 계절이다. 우리 마을의 여름은 30도 이상 올라가는 날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아주 더운 날은 1주일을 넘지 않는다. 좀 덥다 싶으면 가까운 계곡에 가서 물에 몸을 담그면 시원해진다. 봄에 비해 농사일이 조금 줄어들어 나름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난 주말부터 여름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봄에 씨 넣어서 수확한 양상추, 감자, 브로콜리, 상추, 배추 등이 심어져 있는 밭을 시원하게 갈아엎고 퇴비를 다시 넣고 작물을 심었다. 밭을 정리하면서 우리 인생도 가끔 이렇게 싹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자근 자근 쉬어가면서 여름 상추, 오이, 단호박, 샐러리, 쌈배추 등을 심었..

가뭄의 단비 같은 고마운 농활대 (2008.06.27)

마을 생긴 후 처음으로 농활대가 찾아왔다. W대 학생 12명, 6박7일을 꼬박 채우는 일정. 그동안 ‘농촌 체험활동’을 내세운 지원자들이 하루 이틀 정도 어설프게 마을을 거쳐간 적은 있었지만,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주일씩 머물다 가는 오리지널 농활은 올해가 처음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집집마다 묵혀놓고 있던 농사일들을 이번 기회에 말끔히 치워버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농활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원기충천 해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간만에 ‘젊은 애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없지 않다. 도착 첫 날. 남학생들이 모두 똑같은 헤어스타일(6.25 전쟁 고아 스타일의 바가지 머리)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게다가 12명이 똑같이 하늘색 농활 티셔츠를 맞춰 입고 돌..

마른 장마 (2008.06.25)

기상청에서는 장마라고 하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 몇번 간단하게 쏟아지는 비가 전부였을 뿐.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한데 비는 내리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작물이 광합성 작용을 못해서 성장세가 약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장마가 소강상태로 이어져서 좋다. 장마 피해도 없고, 낮에 덥지 않아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를 막 지난 요즘, 해가 무척이나 길다. 저녁 8시를 넘겨서까지 일을 하니 요즘엔 늘 저녁밥을 9시 이후에 먹는다. 좀 고되긴 해도 해질녘 먹구름 덮인 하늘이 만들어내는 그림같은 풍경은 밥보다 더한 힘을 준다.

곁순이 미워요 (2008.06.25)

‘곁순이’라는 여자 이야기가 아니다. 곁순. 줄기 곁에서 나는 순이라는 뜻이다. 작물들은 보통 싹이 나고, 잎이 생기고, 원줄기가 올라가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활짝 피었다가 꽃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그런데 원줄기 하나 올리는 것으로는 씨 퍼뜨리기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 많은 식물들이 원줄기 마디마다 곁순을 키워낸다. 혹시라도 원줄기 꽃봉오리가 제 역할을 못해낼 경우를 대비한 수많은 예비군단인 셈이다. 농부 입장에선 요 곁순들 때문에 농번기가 두 배로 바빠진다. 제때에 곁순을 제거하지 못하면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수시로 곁순 제거 작업을 해줘야 한다. 한 번 따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계속 곁순이 ..

장마와 함께 떠오르는 상추의 추억 (2008.06.18)

고랭지인 장수에선 여름에 상추 농사를 많이들 짓는다. 상추는 서늘한 기온을 좋아하는데, 한여름 불볕 더위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상추가 녹아내릴 때도 장수에선 품질 좋은 상추 출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지 상추가 힘을 못 쓰는 장마철이나 태풍이 지나가는 철에는 상추값이 껑충 뛰기 때문에 잘만 하면 흡족하게 돈을 만질 수도 있다. 귀농 첫 해와 둘째 해에 우리도 연이어 2년 동안 여름 상추 농사를 지었다. 올해도 상추를 심긴 했지만, 소규모 회원 발송용으로 500주 정도만 심어 키우고 있으니 상추 농사 짓는다고 하긴 어렵다. 예전에 일본어 공부하는 한 선배가 "일본어, 처음엔 정말 쉬워보이거든. 근데 웃으며 시작했다가 울며 끝나는 게 바로 일본어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상추 농사 지으며 그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