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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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시골에서 물건 사기 (2008.03.10)

백화골 2009. 3. 4. 11:53

시골에선 농사 짓는 데 들어가는 영농자금 말고는 돈 쓸 일이 별로 많지 않다.식재료는 거의 다 밭에서 해결하고(내가 키우지 않는 것들은 옆집, 아랫집, 윗집, 건넌마을집 등등에서 부지런히 갖다주며, 우리 또한 부지런히 갖다 돌린다), 옷은 패션이나 유행과는 담 쌓고 사는 곳인 만큼, 도시에서 입던 옷들만으로 평생 입고도 남는다. 변변한 유흥업소도 카페도 없으니 사람 만날 일이 있으면 서로의 집에서 만난다. 하지만 가끔씩 맘 먹고 뭔가 사려 하면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지금에야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시골살이에 익숙하지 않던 처음엔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어느 날 문득 크로와상이 먹고 싶어 읍내에서 가장 큰 빵집에 가 "크로와상 있어요?" 했더니 빵집 주인이 되물어보았다. "크로와상이 뭐예요?" 정말 그랬다. 두 번째로 큰 빵집에 가서 "크로와상 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거 없어욧!" 쓰레받기와 빗자루가 세트로 되어있는 실내용 빗자루 세트를 사려고 읍소재지와 면소재지의 플라스틱 가게들을 다 뒤졌지만 결국 사지 못한 적도 있다. 어느 가게에 가나 실내용 비는 나무 손잡이에 까만 솔이 달린 고풍스런 '최고급 돈모 실내비'로 통일돼 있다. 재작년 여름 천둥번개가 치던 날 컴퓨터 모니터가 고장났다.

농산물을 직거래로 주로 팔고 있는 터라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시급한 일이라 모니터를 들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1시간 거리)인 남원까지 달려갔다. 부품이 없고, 공장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기술자가 없고, 본사랑 연락을 해야 되고... 수많은 해명들에 지쳐 거의 포기할 무렵, 그러니까 정확하게 딱 한 달이 지나서야 수리된 모니터를 받을 수 있었다. 

시골생활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물건은 인터넷 쇼핑몰로 주문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일부 택배 기사들이 제 때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 수화물 추적을 해보면 분명히 '배송완료'라고 나오는데, 물건은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거기까지 올라가기 귀찮아서"가 그 이유다. "몰아서 일주일에 한 번만 배달해줄 테니 싫으면 택배 사무실로 직접 와서 가져가요." 또는 "귀찮으니까 OO택배로 물건 좀 주문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 안 그래도 돈 쓸일 별로 없는 곳에서 더더욱 쇼핑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도시가 얼마나 '쇼핑 천국'인지 새삼 느낀다. 일상 생활 하나 하나가 쇼핑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소비로 유도되는 시스템이다. 그런 게 싫어서 이곳까지 온 것이긴 하지만...그래도 가끔은 갓 구워낸 부드러운 크로와상이 먹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