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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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시골에서 물건 사기 2탄! (2008.03.22)

백화골 2009. 3. 4. 11:57

시골이라서 쇼핑 생활이 무조건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는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도시에선 맛보기 힘든.귀농해서 처음 장수에 내려왔을 때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농기구들을 사느라 철물점이니 농약사니 농자재창고 같은 상점에 자주 갔었는데, “OO 주세요.”하면 100이면 100 되묻는 말이 “어디서 왔어요?”였다. 손바닥처럼 빤한 동네다 보니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은 일단 경계대상이 되는 것이다.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이 지역 사람이 아닌 걸로 판명하면 부르는 가격도 조금씩 높아진다. 귀농 4년차로 접어든 지금은 철물점이나 농약사 등의 단골상점에 ‘형님’들이 여럿 생겼다. 일단 믿을 수 있을 만한 지역 사람으로 인정받고 나면, 단순한 상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라 동네 친척 형 동생 관계 비슷한 게 되어버린다.

못 한 줌 사러 가도 “어, 왔어?” 하고 커피를 끓여주며 이런저런 지역 소식을 들려주는가 하면, 1~2천원씩은 꼭 깎아주는 경우가 많다. 상추나 시금치 씨앗을 덤으로 얹어주기도 하고, 농사 관련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사가도 무뚝뚝하게 굴던 걸 생각하면, 이런 행동들이 단순히 손님 유치를 위한 장삿속 상술만은 아니다. 처음의 텃세 장벽만 무사히 넘는다면, 호미 한 자루를 사도 정이 뚝뚝 오가는 상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시골 쇼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장터. 다른 시골 장터처럼 여기도 5일장이 열리는데, 서울의 재래시장처럼 명목만 겨우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5일장 리듬에 맞춰 물건을 사기 때문에 장날이면 읍내에 활기가 넘치곤 한다. 

지난 장날에 우리는 토종 자주 씨감자(8kg 1만원), 농사용 모자(2개에 5천원), 양말 5켤레(5백원씩 2천5백원), 냉이(2천원) 등을 샀다. 냉이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는 어찌나 호호백발인지 아흔은 족히 되어 보이셨는데, 한 바구니 가득 담긴 냉이를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간단한 동작도 여간 힘들어보이지가 않았다.

비닐봉지에 냉이를 옮겨 담은 뒤엔 그 구부정하고 힘든 몸짓으로 주섬주섬 큰 자루의 냉이를 몇 줌 꺼내더니 기어코 덤으로 더 담아 어린애 같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건내주신다. 깔끔하게 포장돼 정확한 그램 수에 맞춘 가격표가 붙어있는 대형마트의 냉이와 장터 할머니에게 산 냉이가 같은 냉이일 수 있을까?

그 후 며칠 동안 향긋한 냉이 된장국과 냉이 무침 등을 해먹을 때마다 양지바른 언덕에 하루 종일 붙어서 냉이를 캤을 할머니의 굽은 등과 해맑은 미소도 절로 떠오르곤 했다. 이런 게 바로 ‘시골에서 물건 사기’의 소소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