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산골에 찾아온 봄, 매화꽃 사이로 지는 석양 (2008.04.14)

백화골 2009. 3. 4. 12:08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마당에 심은 벚꽃과 매화가 피어나고 쑥과 구절초, 산나물들이 힘차게 솟구치며 올라온다. 땅 만들기, 고랑 만들기, 퇴비 뿌리기, 이것저것 파종하기 등 초봄 농사일들을 하나둘씩 해 나가고 있다. 

4년 째 농사를 짓다보니 기계 다루는 일, 이것저것 밭 준비하는 일 등 농사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지나가다 기계 다루는 것 보고 아는 형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자네 완전 선수 다 됐구먼”하고...  요즘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일은 농사일이 아니라 가족회원을 모집하는 일이다. 밭에서 일하다 전화 받고 집으로 들어와야 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메일 확인하고 답장 보내고, 회원 종류가 세분화되는 바람에 이것저것 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여간 힘들지 않다. 

삽질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가족회원에 대해 묻는 전화를 받으면 우선 헉헉대는 숨 거두느라 힘들고, 정신을 집중해야 해서 더 어렵다. 예의를 갖춰서 기분 좋게 전화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무슨 쇼핑몰 판촉사원 대하듯 이것저것 시비조로 묻는 분들도 있어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1년 내내 농산물 판매하느라 힘든 다른 농민들에 비해 한 달만 노력하고 나머지 1년은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되는 상황이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 한다. 

작년에 장수군 계북면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형님이 가져다 주어 심었던 벚나무. 회초리 같이 가늘고 어렸던 묘목이 어느 새 커서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웠다. 심고 난 뒤 거름 한 번 안 주고 방치해두었는데도 제가 알아서 잘 컸다. 

얼마 전에 이사와 이웃이 된 아랫집 민채네 마당에도 매화가 아름답게 피었다.

산이 분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북한의 국화라는데, 무궁화보다 우리 정서에 더 맞는 꽃인 것 같다.

시골에서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없다. 무엇이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하우스 비닐은 오래 되면 투광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3년에 한 번 꼴로는 갈아주어야 하는데, 우리 하우스가 이제 막 3년이 지난 터라 봄 작물 넣기 전에 교체하려고 한 달 전쯤 농협에 주문을 했다.

하우스 크기에 딱 맞춰서 비닐을 주문하면 일하기도 수월하고 돈도 절약된다는 장점이 있다. 주문하며 물어보니 늦어도 2주면 공장에서 비닐이 도착할 거란다. 그 말만 믿고 일정을 잡아놨다가 2주 째 되는 날 가보니 4일 후에 오라고 한다.

4일 후 가보니 아직도 안 왔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찾아가고 독촉한 후에야 주문한 비닐을 받을 수 있었다. 답답하지만 누구한테 화를 내랴. 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닌 것을. 농촌에서 합리적이고 신속한 일처리나 효율성을 기대했다가는 속 터져 제 명에 못 살지도 모른다.

힘들게 받은 하우스 비닐을 새로 씌우는 데 걸린 시간은 우리 부부와 이웃 한 명까지 셋이서 2시간. 작년에는 겨울동안 벗겨놓았던 비닐을 다시 씌우는 작업만 둘이서 하루종일 걸렸다. 재작년에는 우리 손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예 상상도 못했고. 일 다 마치고 반짝반짝 새 집이 된 하우스를 보니 참 뿌듯하다. 이제 볕이 더 잘 들 테니 여기 심을 토마토, 고추, 오이, 참외, 호박 참 맛있겠다.

마트 가서 식재료를 살 필요가 없어졌다. 지천에 깔린 쑥으로 쑥국, 쑥전, 쑥떡 해먹으며 살면 된다. 몸에 좋은 데가 흔하디 흔한 고마운 쑥!

쑥과 구절초를 구별할 수 없다면 어디 가서 시골 사람이라고 명함 못 내민다. 쑥이 올라오기 전부터 가장 먼저 치고 올라는 게 구절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키운 배추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지금까지 배추 심어 재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봄배추는 벌레의 천국이라 할 만큼 모종 때부터 수확 때까지 온갖 벌레가 다 달려든다. 단 하루 만에도 배춧잎을 구멍이 숭숭 뚫린 곰보로 만들어버리는 벼룩벌레가 특히 봄배추엔 쥐약이다. 이런 배추를 보내면 아무리 유기농 농산물을 이해하는 분이라도 좋아하지 않는다. 

올해는 배추를 3월 중순에 하우스에 심어봤다. 매일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라 초기 벌레 피해가 전혀 없었다. 초기에 기세 좋게 어느 정도 성장을 해놓고 나니 벌레들이 막 활동을 시작하는 요즘에도 벌레가 배추 성장세를 당하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보기 좋은 유기농 배추로 잘 자라고 있다. 올해 우리 병충해 방제 계획은 무언가 벌레 피해를 막으려고 차후에 노력하기보다는 작물을 강인하게 빨리 자라게 해서 미리미리 방지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3년 넘게 유기농으로 농사지었으니 땅심이 강해져 어지간한 병충해에는 작물이 이길 것이다.

당근도 원래는 4월말에 파종하는 작물인데, 워낙에 발아율도 떨어지고 자라는 속도가 늦어서 3월 중순에 하우스에 심었다. 쑥쑥 잘 자라고 있다.  

몸에 좋은 시금치도 일찍 심었다. 멀칭을 안하고 심어서 풀 잡기가 쉽지 않지만 맛좋은 시금치를 기다리며 아침마다 풀 뽑기를 해주고 있다. 

뿌려만 놓으면 정말 잘 자라는 아욱. 

작년에 재미를 톡톡히 봤던 애호박, 봄에 심어 11월까지 땄다. 올해도 잘 되기를 기원하며 정성스럽게 심었다.

아스파라거스 아쉽게도 초봄에 잠깐 나오다 말아 회원들에게는 보내기 어려운 작물이다. 우리만 맛나게 먹는 유일한 작물. 

양배추를 많이 심었다. 작년에는 추비를 제 때 못 줘서 크기가 앙증맞을 정도로 작았는데, 올해는 추비를 듬뿍듬뿍 줘 좀 더 크게 키워봐야지. 

브로콜리, 진딧물과 온갖 벌레가 엄청나게 달라붙는 작물이다. 올해는 좀 제대로 키울 수 있을런지.

맵지 않은 하우스 전용 고추다. 풋고추로만 재배하는 품종이라 아주 맛있다. 

방울토마토를 큰 토마토보다 먼저 심었다. 작물이 단계별로 나오게 하기 위해 일정 조절을 하고 있다. 

화주! 막걸리에 진달래 띄워 먹는 이 재미 때문이라도 봄이 기다려진다.

해질 때까지 일하는 계절이 시작됐다. 마당 매화 꽃 사이로 지는 해가 정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