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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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집에 돌아오다 (2008.03.01)

백화골 2009. 3. 4. 11:51

석 달 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장수로 돌아오는 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풀린다는 기상예보만 믿고 넉넉하게 날짜를 잡았건만, 뭔가 심상치 않았다. 역시나 낮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강추위, 몸도 마음도 꽝꽝 얼어 버리는 것 같았다. 장수에 돌아오자마자 폭설이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동파를 대비해 빼 놓았던 물을 연결하고, 보일러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작년에 한번 해봤다고 여유만만하게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장수의 이번 겨울은 유독 추웠나 보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2월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수도 중간 밸브를 열어야 하는데, 땅이 얼어서 곡괭이질도 삽질도 되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윗집 이웃이 내려와 곡괭이질을 도와준다. 겨우겨우 중간 밸브를 열었는데 집에 들어가 보니 물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물을 모터로 빼고 갔어도 중간에 남아 있는 물이 조금은 있었을 것이고, 그게 강추위에 얼어버린 것 같았다. 난감했다.

너무 춥다. 일단 보일러부터 손보기 시작.

물이 안 나와서 고민하고 있는 터에 또 다른 이웃이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집안 정리가 안 돼 밥도 못 해먹는 것을 알고 맛있는 떡국을 해준다. 감사히 먹고 다시 집에 내려와 보니 운 좋게도 부엌과 보일러쪽 물은 나오기 시작한다. 연장을 챙겨들고 보일러를 연결했다. 작년과 똑같이 작업을 하고 기분 좋게 나무를 때고 있는데 보일러 온도만 올라가고 방바닥이 따뜻해지지가 않았다. 원인이 뭔지 몰라서 전기담요를 펼쳐놓고 잤다. 아주 추운 밤!

바깥 온도가 아니다. 안방에 걸려 있는 실내 온도계 눈금이 영상 4도를 가리키고 있다. 거의 냉장고 온도 수준이다.

다음날 아침. 보일러를 자세히 살펴보니 방으로 들어가는 배관이 얼어버린 것 같다.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몇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밖에는 계속 눈이 내리고 찬바람은 불어대고. 고생고생하다 보일러를 녹여서 방에 불이 들어오니 얼마나 따뜻하고 좋던지! 하지만 목욕탕 쪽 물은 계속 나오지 않는다.

목수일 하는 아랫마을 형님에게 S.O.S를 쳤다. 이런 일들을 그동안 많이 겪었는지, 아예 자기가 직접 제작한 수도 녹이는 도구를 가지고 왔다. 가는 호스를 깔대기에 연결해 수도관 속으로 바로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게 만든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도구다. 하지만 아쉽게도 ㄱ 자로 꺾여 들어가는 우리 목욕탕 수도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 여러 번 시도하다 목수 형님은 그냥 하산했다.

물을 끓여 언 수도에 계속 부었다.

우리 집 수도관 구조에 맞춰 우리도 아주 얇은 호스를 이용해 수도 녹이는 기구를 자체 제작했다. 깔대기를 통해 이틀이나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도 물이 나오기 않았다. 그러다 어제 낮에 날씨가 풀리니 저녁 때 수도가 녹았다. 겨우겨우 한 시름 놓고 집안 정리, 농사 계획 세우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며칠 춥게 잤더니 몸이 얼어선지 힘도 없고, 오랜만에 나무 때느라 도끼질을 했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집안 구석구석 거미줄도 치우고 쌓인 먼지도 닦아내고 대청소까지 대강 끝낸 뒤 간만에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하며 우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따뜻한 집에 따뜻한 밥, 게다가 잔뜩 할 일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