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69

풀 잡는 시절, 오디잼 만들기 (2008.06.12)

장마가 오기 전에 풀을 잡아야 하는 시절이다. 지금 풀을 잡지 못하면 올해 농사는 풍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마가 시작되면 손가락 만한 풀들이 며칠 새 사람 키만큼 커진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짓는 사람들은 지금이 풀 잡느라 한창 바쁠 때다. 우리는 골과 골 사이에 부직포를 대며 풀을 잡기 때문에 그나마 풀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풀들이 성장세가 대단하다. 마음은 얼른 얼른 풀 뽑아 줘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풀 잡기가 더디다. 게다가 무리하게 고구마밭 풀을 메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서 더 고되다. 지난주에는 마을 인터넷 시스템이 번개를 맞는 바람에 1주일이나 인터넷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에도 이맘 때 번개 탓에 인터넷을 1~2주 정도 사용 못 한 기억이 ..

고수 재배 성공하다 (2008.06.03)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첫 배낭 여행 때 방콕에서 난생 처음으로 고수풀을 맛보았다. 그 이상야릇한 낯선 맛이란!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 고수 향에 질색하기 때문에 가이드북에 아예 “음식을 주문하기 전 ’노 팍지‘라고 말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고수는 태국 말로 ‘팍지’다. 우리도 처음 맛본 팍지 맛에 적응하지 못하고 음식점에 들어갈 때마다 “NO 팍지!”를 외쳤다. 그러다가 귀농 후 뜻밖에 고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귀농한 지 얼마 안 돼 아랫마을 이장님과 함께 고기를 먹는데 이상하게 생긴 쌈채소가 있기에 “이게 뭐예요?” 했더니 씨익 웃으며 “이거? 고수야, 고수. 고수 못 먹으면 여기 사람 아니지.” 하신다. 맛을 보니 태국에서 먹었던 바로 그 ‘팍지..

촛불과 함께 보낸 주말 (2008.06.01)

금요일에는 장수에서, 어제는 전주에서, 주말 저녁을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보냈다. 장수읍 시장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300여명의 장수군민들이 참석하여 뜻깊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 중고생부터 70대 농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여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농민회원분들과 따뜻하게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전주에서 어제 열린 촛불집회는 달라진 집회 문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요즘 매일 서울 집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긴박함은 없었지만, 일단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랐고, 집회 때마다 매번 마주치는 ‘그 얼굴이 그 얼굴’들은 거의 볼 수 ..

가뭄에 촉촉한 단비 (2008.05.28)

단비가 내렸다. 1주일 전부터 갑자기 기온이 높아진데다가 비가 안 와서 5월 들어 심어 놓은 고추, 고구마, 야콘, 쌈채소 등이 말라가고 있었다. 하우스야 관수 시설이 되어 있지만 노지밭은 한번 물을 주려면 이래저래 참 힘이 든다. 게다가 햇볕 쨍쨍 날 때 물을 줘봐야 별 소용도 없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고구마 같은 작물은 심을 때나 직후에 비를 많이 맞아도, 2차로 비를 맞아야 완전히 활착을 한다. 오래도록 비가 안 와서 애타던 차에 오늘 단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호우 확률 100%를 장담하던 일기예보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마구 쏟아지는 품새가 아주 시원하게 가뭄을 해갈할 태세다. 어제 저녁에 오늘 비를 생각하고 여기저기 싹이 안 난 자리를 모종으로 ‘땜질’ 해놓았는데, 비가 와서 다..

푸르른 5월 백화골의 작은 소식들 (2008.05.24)

농촌에서 가장 바쁜 달이 5월이다. 올해 5월은 조금 낫겠지 하던 기대는 금세 무너지고 지난 ‘5월’들처럼 쉴새없이 일했다. 바빠도 아주 힘나게 일하고 있다. 가족회원 농산물 보낸 지 3주가 되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마음 따뜻한 격려를 해주어서 순간순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작은 농가의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건강한 농산물을 가족처럼 함께 나눈다’는 우리 회원제 취지를 십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일하면서도 신이 난다. 요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시끄러운데, 미국에도 예전에는 우리처럼 작은 농가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소도 사람도 농산물도 건강했던 시절이다. 그러던 것이 농촌에 규모화 바람이 불고, 대규모 기업농이 생기면서 들판에서 키우던 소들을 공장에 넣고, 항쟁제와 동물성 사료로 ‘효율..

벌 (2008.05.14)

농부들 중에 벌에 쏘여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이가 있을까?있다면 굉장히 운좋은 사람일 거다.하지만 이렇게 쏘여가면서도 농부들은 벌에 너그럽다.큰 규모로 토마토 농사짓는 이들 중엔 일부러 비싼 수정벌을 사다가 풀어넣는 경우도 많다. 주둥이며 발에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선 붕붕거리며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는 벌을 보면 기특하기 짝이 없다. 태어나서 귀농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벌에 쏘여본 적이 없었다.'벌에 쏘이면 어떤 느낌일까?'하고 은근히 궁금하기까지 했다. 시골 내려와 농사 지으며 드디어 그게 어떤 느낌인 지를 알게 됐다. 귀농 첫 해 상추 농사를 지을 때다.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상추 따는 데만 몰두해있는데 갑자기 어깨가 '따끔'했다.벌은 먼저 겁주지만 않으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 비겁한 놈이..

하루종일 헬기소리 끊이지 않은 날 (2008.05.10)

아침부터 바람이 거창하게 분다. 날씨는 쨍쨍 화창하게 맑은데, 건조한 봄바람이 끊임없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엔 일하기도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사람 신경을 바싹 긁어놓는다. 원래 오늘 할 예정이었던 고구마밭 비닐 멀칭을 다음으로 미루고(바람 부는 날 비닐 멀칭하려면 몇 배가 힘이 든다), 고추 곁순 따고 줄 묶어주는 등 하우스 안에서 하는 일들을 했다. 그런데 오전 나절에 마을 동쪽에 있는 남덕유산 쪽을 무심코 봤다가 깜짝 놀랐다. 산 중턱에서 흰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산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저걸 어떻게 하나, 이웃들과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두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주황색 소방 헬기들이 나타난다. 멋지..

농가의 벗들을 소개합니다~ (2008.04.30)

옛날에 글 쓰던 선비들에게 문방사우(붓, 벼루, 먹 등)가 있었듯이, 바느질 하던 여인들에게 규방칠우(바늘, 골무, 자 등)가 있었듯이, 농삿꾼에게도 늘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벗이 있다. 몇 백,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농기계들이 농촌을 주름잡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벗들 없이는 하루도 농사일을 제대로 꾸려가기가 어렵다. 호미, 낫, 괭이, 삽... 볼품없어 보이는 단순한 농기구지만 손 때 묻도록 오래 쓰다보면 어느 새 정이 든다. 누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속상하다. ‘문방사우’, ‘규방칠우’ 할 때 왜 한낱 물건에다가 ‘벗 우’자를 썼는지 마음으로 이해가 간다. 삽. 농기구들 중에서도 제일 일 많이 하는 믿음직한 대장이다(그동안 돌덩이 같은 땅 파다가 삽자루가 부러지..

봄기운과 함께 신명나는 본격 농사철 시작 (2008.04.22)

논밭과 농민들이 들썩들썩 일어나는 시절이 찾아왔다. 봄기운이 식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생명력을 전달해주는 것 같다. 일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몸은 고되어도 왠지 흥겹다. 하루가 어느 틈에 훌쩍 지나간다. 이게 바로 농사짓는 매력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 일의 주인이 되는 삶을 얼마나 꿈꾸어왔던가! 이것저것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작물도 잘 크고 가족회원 모집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3년째 가족회원제를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어 올해 더 많은 가족들이 생겼다. 모든 가족들에게 행복한 푸른 밥상을 전할 수 있도록 밭의 지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작물을 넣고, 발송 계획을 잡고 있다. 작년의 한 농가에 이어 올해 두 농가가 가족회원제를 시작하기로..

미국산 미친 소에 죽는 한국 농촌 (2008.04.20)

아침마다 귀청을 울려대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근처 축사에서 ‘웰빙 소’를 키운답시고 틀어대던 음악이다. 최근 미국산 소고기가 전면 수입개방 된다는 소식에 농촌은 상갓집 같다. 소 키우는 사람들이 다 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우리 같은 소농들도 경제적, 심리적 타격이 없지 않다. 미국에 간 한국 대통령이란 사람이 임기도 얼마 안 남은 미국 대통령에게 바보 같은 짓거리들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미국병 환자라 해도 그냥 자기 혼자 설설 기다 왔다면 조롱거리로 끝났을 테지만, 그 사이 광우병 의심 지역인 미국의 소고기를 전면 수입개방하기로 협의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미국에선 최근에도 인간 광우병이 발생했다는데. 차 타고 축사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착잡하다. 게다가 작년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