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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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69

겨울, 정기 휴가 들어갑니다 (2008.11.04)

오늘 아침, 첫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9시 훨씬 넘어서까지 하얗게 꽁꽁 얼어붙은 차 앞유리가 녹을 줄 모르더군요. 백화골에선 막바지 밭정리와 함께 올 겨울 떠날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길고 긴 겨울 휴가. 한국 농부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면 특권인 셈입니다. (동남아시아 농부들은 1년에 3모작, 4모작씩 하더군요. 부럽다기보다는 '어떻게... 1년 내내 한 철도 못 쉬고... 저 힘든 농사일을 계속... 쯧쯧...' 하는 게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농사일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고, 농사꾼인 게 자랑스러운 만큼 여행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희는 올 겨울에도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터키, 불가리아...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돈 많냐구요? ..

쌀 직불금 사태를 보며 옛 일을 떠올리다 (2008.10.16)

3년 전쯤인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주변 땅들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몇 다리 건너 하우스를 임대해준다는 소개를 받고 주인을 만나러 갔다. 무슨 갈비집에서 주인과 만났는데, 낮부터 친구들과 한가로이 갈비를 뜯고 있는 모습하며 양복을 빼 입은 게 농민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땅 빌리는 얘기가 본론으로 접어들자 척 하니 계약서부터 꺼낸다. A4 용지 서너 장에 걸쳐 컴퓨터로 뽑은 것이 한 두 번 해본 일이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계약서 조건이 열이면 열 다 지주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논농업직불금은 땅 주인이 받는다'는 항목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빌리기로 한 곳은 하우스, 그럼 당연히 밭일텐데, 논농업직불금은 또 뭐야..

가뭄에 고구마 캐다 (2008.10.14)

언제부터 비가 안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오는 날씨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릴 정도로 매일 해가 쨍쨍 뜬다. 가랑비가 잠시 내리다가도 금세 그친다. 다음날 오후부터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이 지역에선 서리가 일찍 내린다. 10월 중순부터는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추위에 약한 고구마나 야콘 같은 식물은 서리를 맞으면 장기 저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리 내리기 전에 반드시 캐야 한다. 요즘 1주일 넘게 고구마를 캐고 있다. 땅이 쩍쩍 갈라져 있다. 고구마 순도 말라 비틀어버릴 지경. 이 메마른 땅을 힘겹게 헤집으며 고구마를 캔다. 일손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해 봐도, 지금은 ‘단풍놀이철’이라 농촌에 와서 일 도와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 땅이 마르면 고구마는 점점 더 ..

몽실이와 초롱이 (2008.10.06)

오늘은 우리 동네 개 이야기. 1년을 하루같이 전봇대에 묶여 지내는 외로운 초롱이(아랫집에서 키우는 개). 동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힘겹게 도랑을 건너와 꼬리를 흔드는 게 사교활동(?)의 전부이던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뉴 페이스! 윗집에서 최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몽실이. 처음엔 약간의 탐색전... 사이즈의 불일치에서 오는 어색함은 금세 극복하고 즐겁게 장난을 치는 초롱이와 몽실이. 목도 긁어주고... 같은 표정 짓기 놀이도 해보고... 급기야 정다운 포옹까지! 우리, 우정일까 사랑일까? (참고로 초롱이는 수놈, 몽실이는 암놈임)

오늘의 하늘 (2008.09.26)

갑자기 추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상추를 따는데 손끝이 시리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에 적응하느라 몸이 움츠러든다. 내일은 서리가 내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진짜 서리라도 내리면 큰일이다. 서리 오기 전 수확해야 하는 작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오후엔 잔가지를 모아 장작보일러에 불을 넣었다. 하루종일 덜덜 떨었지만 오늘, 하늘만은 정말 기념할 만했다. 일하다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보고, 탄성 한 번 지르고... 이것이 바로 한국의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이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 (2008.09.25)

어제 오후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그동안 속아온 전력이 있는 터라 아무도 믿지 않았다. 윗집 용민이네는 배추에 3시간 동안이나 호수를 연결해서 물을 주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일기예보가 맞았다. 저녁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밤새 비가 내렸으니 꽤 땅을 촉촉이 적셨나 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가뭄으로 고생하던 작물들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뭇잎 사이로 밤새 내린 비가 방울방울 달려 있다. 시골에 내려온 이후로 이러저러한 피해 때문에 비를 싫어했으나 이렇게 가뭄이 심하게 드니 비가 내리는 게 얼마나 반가운..

땅콩과 참깨 수확, 늦더위, 가뭄, 비를 기다리는 밤! (2008.09.21)

늦더위에 가뭄이 계속된다. 한낮에는 30도까지 올라가고 비가 한달 째 전혀 안 내린다. 작년과 반대다. 작년에는 이맘 때 한달 내내 비가 와서 애를 먹었다. 올해는 비가 안 와서 작물들이 말라죽는다. 때아닌 늦더위에 파리와 모기떼만 미친 듯이 날뛴다. 게다가 추석 무렵부터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여 울상 짓는 사람들이 많다. 홍로 사과 5kg에 공판장 가격이 5~6천원, 상추 4kg 한 박스가 5~6천원, 토마토는 10kg 한 박스에 1만원 전후다. 가뭄으로 가뜩이나 수확량이 적은데 가격까지 떨어지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원래 날씨가 안 좋아 수확량이 떨어지면 공판장 경매가는 올라가는 법인데. 시골에 내려온 후부터 점점 추석이 싫어진다. 느긋하게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는커녕 택배 물량 몰려 물류 대란으로..

가을 농사 이것저것 & 사과밭에서 보낸 7년(같은 3일) (2008.09.08)

장수의 가을 아침은 산 중턱에 깔리는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비지땀 흐르는 한여름과 덜덜 떨리는 초겨울을 오가는 낮과 밤의 큰 일교차를 중재해주는 듯하다. 농촌에서 가을은 풍성한 잔치의 계절! 수확의 기쁨이 농부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해준다. 지난 몇 년간 가을 준비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되새기며 올해엔 제대로 가을 준비를 했다. 김장배추와 무, 가을 양배추와 감자, 비트 등 가을 작물을 미리 미리 모두 심고, 겨울에 땔 나무를 다 베어 놨다. 올 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수수가 하루가 다르게 빨그레 익어간다. 가을 하늘과 어우러지는 색감이 멋지다. 작년에 김장배추 심을 시기를 가을 장마 때문에 놓쳐 한이 맺혔다. 올해엔 반드시 배추 농사를 제대로 해보리라 다짐을 했다. 그것도 부드러운..

추석이 코앞, 농촌 일손 확보 초비상 걸리다 (2008.08.25)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 농촌에선 추석 시즌이 개막됐다. 9월14일이면 아직도 3주나 남았지만 추석 대목을 노리고 농사지어온 많은 농민들은 오로지 이 한철 농산물 팔아 1년을 살아야 하기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게 일한다. 특히 사과, 배 등 과수 농가와 버섯, 오미자 등 특용 작물을 키우는 농민들이 가장 바쁘다. 추석 선물에 맞추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몇 배의 일손이 필요하다. 각 농가마다 인력 확보하느라 초비상이지만 사람 없는 농촌에 갑자기 일꾼들이 뚝 떨어질 리 만무하다. 바깥에서 어떻게든 일손을 꾸어올 수밖에 없다. 농사일로 받는 일당은 보통 남자는 5~6만원, 여자는 3~3만5천원 선이다. 멀리서 일하러 오는 사람인 경우 숙식 제공에 참도 주고 술도 준다. 일은 보통 아침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힘들긴..

여름 끝 가을 시작 (2008.08.18)

며칠 새 더위가 사라졌다. 한낮에도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전형적인 가을바람이 분다. 세수하고 나면 얼굴이 땅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 여름은 다행히 큰 비나 바람, 태풍이 없어 농사짓는데 좋았다. 적당히 비가 내렸고 더웠다. 일기예보는 계속 틀렸지만 오보를 예상하고 일하니 평안했다. 농작물은 잘 자랐고, 우리는 지난 3년간의 영농일지를 참고하여 병충해 방제를 하고 씨앗을 넣고 작물을 관리했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여름이었다. 귀농해서 가장 기분 좋은 일 하나가 빨래가 잘 마른다는 것이다. 도시처럼 나쁜 냄새가 들어설 틈도 없고, 날씨만 화창하면 몇 시간 사이에 깨끗하게 빨래가 마른다. 내친 김에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