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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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가뭄에 촉촉한 단비 (2008.05.28)

백화골 2009. 3. 4. 12:34

단비가 내렸다. 1주일 전부터 갑자기 기온이 높아진데다가 비가 안 와서 5월 들어 심어 놓은 고추, 고구마, 야콘, 쌈채소 등이 말라가고 있었다. 하우스야 관수 시설이 되어 있지만 노지밭은 한번 물을 주려면 이래저래 참 힘이 든다.

게다가 햇볕 쨍쨍 날 때 물을 줘봐야 별 소용도 없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고구마 같은 작물은 심을 때나 직후에 비를 많이 맞아도, 2차로 비를 맞아야 완전히 활착을 한다. 오래도록 비가 안 와서 애타던 차에 오늘 단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호우 확률 100%를 장담하던 일기예보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마구 쏟아지는 품새가 아주 시원하게 가뭄을 해갈할 태세다. 어제 저녁에 오늘 비를 생각하고 여기저기 싹이 안 난 자리를 모종으로 ‘땜질’ 해놓았는데, 비가 와서 다행이다.

심은 다음 비를 한번 맞았는데도 시들시들 활착을 못하던 고구마와 물이 부족해서 시들시들 말라가던 꽈리고추도 잘 살겠구나. 하지만 오늘은 가족회원 농산물을 발송하는 날,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조금 그친 다음에 나갈까? 아내가 빨리 나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비를 맞으며 하우스로 달려가 이번 주부터 수확하기 시작한 감자부터 캤다. 우두두둑 비닐하우스를 때리는 빗소리가 귀를 울리고, 비옷을 입고있던 터라 땀이 온몸을 적신다. 감자를 캐고 난 다음 상추를 따고, 당근도 뽑고, 미나리를 베고... 본격적으로 포장작업이 진행된다.

비가 오니 이동하기도 힘들고 작업 속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포장 작업하는 틈틈이 들깨를 다시 심었다. 깻잎을 따기 위해 며칠 전에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아무리 물을 줘도 잘 활착을 하지 못했다. 비를 맞으며 심으니 모든 들깨 모종이 힘차게 일어서며 바로 활착을 하는 듯 하다.

역시 들깨도 고구마처럼 비 맞으며 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택배차가 오기 직전인 오후 6시 쯤에야 겨우 포장작업이 끝났다. 종일 내리던 비도 멎었다. 눅눅해진 집안을 말리기 위해 오랜만에 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집에 들어가 쉬려는데, 우리 집 작업반장인 아내가 해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딜 들어가냐며 성화다.

사실 요즘엔 오후 6시부터 8시 정도까지가 일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아내와 함께 옥수수, 참깨 모종을 냈다. 올해 처음으로 참깨를 심어봤는데, 듣던 대로 싹이 난 것이 30%도 안 되었다. 고민하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마을 형님이 참깨를 모종내서 심어 봤는데 잘 되더란 말을 전해주었다.

보통 참깨는 옮겨 심으면 안 된다는 게 통설이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참깨도 포트에 모종을 내고 3차 옥수수 파종도 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이 되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빗속에 고생스럽게 일하긴 했지만, 밭에 심어진 작물들이 비 맞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 하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