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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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풀 잡는 시절, 오디잼 만들기 (2008.06.12)

백화골 2009. 3. 4. 12:39

장마가 오기 전에 풀을 잡아야 하는 시절이다. 지금 풀을 잡지 못하면 올해 농사는 풍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마가 시작되면 손가락 만한 풀들이 며칠 새 사람 키만큼 커진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짓는 사람들은 지금이 풀 잡느라 한창 바쁠 때다. 우리는 골과 골 사이에 부직포를 대며 풀을 잡기 때문에 그나마 풀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풀들이 성장세가 대단하다.

마음은 얼른 얼른 풀 뽑아 줘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풀 잡기가 더디다. 게다가 무리하게 고구마밭 풀을 메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서 더 고되다. 지난주에는 마을 인터넷 시스템이 번개를 맞는 바람에 1주일이나 인터넷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에도 이맘 때 번개 탓에 인터넷을 1~2주 정도 사용 못 한 기억이 나서 비용은 좀 들었지만, 이번 기회에 개인적으로 인터넷 회선을 연결했다. K 회사로 인터넷 회선 신청을 하니 가입 선물을 준다며 16가지 품목 중 하나를 고르란다. 탐나는 물건이 많아 고심하다가 혼자 알아서 청소해준다는 로봇 청소기를 골랐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올 때마다 옷에서 떨어지는 흙먼지 때문에 매일 청소해도 방바닥이 항상 꺼칠꺼칠했는데, 로봇 청소기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해 줄지 기대된다. 오늘 택배로 받아 지금 충전중이다.

야콘이 부활했다. 5월초에 너무 일찍 심는 바람에 서리를 맞아 다 죽을 줄 알았던 야콘이 5월 말부터 다시 살아나서 이제 완벽하게 살아났다.

야콘만 살아나면 좋겠는데, 풀들도 덩달아 살아난다. 미칠 지경이다. 비닐로 멀칭하고 부직포까지 댄 틈새로 작물 옆에 이렇게 나오는 풀들은 정말 끈질기게 솟아난다.

활착을 잘해서 이제 막 뻗어나가야 할 고구마 옆에도 풀들이 징글징글하게 자라난다. 한창 풀을 뽑고 있는데 아랫마을 어르신이 지나가다 한말씀 하신다 "아이구 이 친구야, 그 풀들을 언제 다 메어주남. 고구마만 남기고 풀은 싹 죽이는 좋은 제초제 있어"... "아 맞아 자네 마을 사람들은 친환경인가 한다며 제초제 안 친다지? 에이 언제 다 그 풀을 메줘, 쯧쯧..."

고구마와 야콘을 심은 밭 옆에 조그만 언덕이 있는데, 예전 가야 시대 족장의 무덤이란다. 굉장히 역사 깊은 곳인 듯한데 관리는 전혀 안 되고 있다. 우리도 밭에서 괭이질 하다가 도자기 깨진 조각을 몇 번이나 발견한 적이 있다. 아무튼 우리는 매일 가야 족장의 무덤 뒤로 사라지는 해를 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곤 한다.

풀을 뽑다보면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미친 듯이 풀을 뽑다가, 그것도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일하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을 삐었다. 평소 자주 가는 용한 한의원에서 벌침까지 맞아도 좋아지지 않는다. 일을 안 하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왼쪽 손을 거의 안 쓰며 일하고 있다. 며칠 지나면 좋아지겠지.

한창 풀 잡아야줘야 하는 시절인데, 자주 전주에 가게 된다. 그저께도 6월 항쟁 기념 촛불집회에 참석하느라 전주에 다녀왔다. 천 명 정도 모이던 자리에 1만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맘 때 가장 맛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뽕나무 열매인 오디다. 하지만 오디는 금방 짓무르기 때문에 택배로 보낼 수가 없어 잼이나 효소로 만들어야 한다. 재작년에는 오디잼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보냈으나 작년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디철을 그냥 지나쳤다.

올해도 너무 일이 바빠서 오디잼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3년째 가족회원인 분이 첫 해 때 받았던 오디잼이 너무 맛있었다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메일을 보고 둘이서 심기일전, 풀 잡는 건 하루만 미루기로 하고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오디를 따고 끓이고 야단난리법석을 떤 끝에 회원 수 만큼 오디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진공 상태로 만들기 위해 거꾸로 일렬로 세워놓은 오디잼 병들을 보니 너무나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