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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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고수 재배 성공하다 (2008.06.03)

백화골 2009. 3. 4. 12:37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첫 배낭 여행 때 방콕에서 난생 처음으로 고수풀을 맛보았다. 그 이상야릇한 낯선 맛이란!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 고수 향에 질색하기 때문에 가이드북에 아예 “음식을 주문하기 전 ’노 팍지‘라고 말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고수는 태국 말로 ‘팍지’다. 우리도 처음 맛본 팍지 맛에 적응하지 못하고 음식점에 들어갈 때마다 “NO 팍지!”를 외쳤다. 

그러다가 귀농 후 뜻밖에 고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귀농한 지 얼마 안 돼 아랫마을 이장님과 함께 고기를 먹는데 이상하게 생긴 쌈채소가 있기에 “이게 뭐예요?” 했더니 씨익 웃으며 “이거? 고수야, 고수. 고수 못 먹으면 여기 사람 아니지.” 하신다.

맛을 보니 태국에서 먹었던 바로 그 ‘팍지’다. 특이하게도 무주 진안 장수 같은 전라도 일부 산간 지역에선 고수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특히 고기 구워 먹을 땐 빠뜨리지 않고 곁들이는 야채라나. 이장님은 ‘요 서울 촌놈아, 고수 못 먹겠지?’ 하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으며 먹나 못 먹나 지켜보고 있다. 오기가 나서 일부러 우적우적 계속 입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맛들이기 시작한 고수를 지금은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제 나도 여기 사람이 다 된 게다. 고수풀은 원산지인 지중해 인근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전지역에서 즐겨먹는 허브라고 한다.

위에 좋아 소화를 돕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신경 안정제로서의 효과가 탁월해 한국에서는 산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이 주로 먹었다고 한다. 북한과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서울에서도 백화점 허브 코너나 허브샵에 가면 ‘코리앤더’라는 영어 이름을 달고서 아주 비싸게 팔린다.

처음 맛보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으나 몇 번 먹다보면 광적으로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고수 중독자 중 하나인지라 직접 한 번 재배해보고 싶어 올 봄 처음으로 씨를 뿌려보았다. 씨 뿌리고 3~4주 기다리자 고수가 예쁘게 싹을 틔우고 자라났다.

직접 밭에서 뽑아 먹으니 향기와 맛이 더욱 좋다. 원래 혼자만 먹으려고 재배했으나 흔히 보기 힘든 귀한 야채인데 가족 회원들도 맛이나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주에 한번만 고수풀을 발송하기로 했다. 물론 고수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 아주 소량씩만 넣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냄새가 너무 이상해요. 고수풀 다시는 보내지 말아주세요” 같은 항의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모두들 어떤 표정을 지으며 고수 맛을 보았는지 조금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