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농가의 벗들을 소개합니다~ (2008.04.30)

백화골 2009. 3. 4. 12:14

옛날에 글 쓰던 선비들에게 문방사우(붓, 벼루, 먹 등)가 있었듯이, 바느질 하던 여인들에게 규방칠우(바늘, 골무, 자 등)가 있었듯이, 농삿꾼에게도 늘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벗이 있다. 몇 백,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농기계들이 농촌을 주름잡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벗들 없이는 하루도 농사일을 제대로 꾸려가기가 어렵다.

호미, 낫, 괭이, 삽... 볼품없어 보이는 단순한 농기구지만 손 때 묻도록 오래 쓰다보면 어느 새 정이 든다. 누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속상하다. ‘문방사우’, ‘규방칠우’ 할 때 왜 한낱 물건에다가 ‘벗 우’자를 썼는지 마음으로 이해가 간다.  

삽. 농기구들 중에서도 제일 일 많이 하는 믿음직한 대장이다(그동안 돌덩이 같은 땅 파다가 삽자루가 부러지는 바람에 과로사(?)한 놈이 셋이나 된다). 농사짓다 보면 땅 팔 일이 정말로 많은데, 삽 한 자루가 무궁무진한 일을 해낸다. 장화 신고, 목장갑 끼고, 삽 한 자루 들고 나가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일 다 끝낸 뒤 삽날에 달라붙은 진흙덩이를 물로 씻어내며 정리할 땐 어떤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유명한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란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호미. 날이 넓적한 호미는 작물 심은 뒤 흙을 긁어 복토할 때나 풀 맬 때 좋고, 날이 뾰족한 호미는 고추 등을 심을 때 좋다. 주로 밭에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일할 때 많이 쓰는 도구이다 보니, ‘잠깐 쉬었다 와야지’하고 밭에 그냥 놔두고 왔다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호미를 다음 해 봄에 밭 갈다가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다.  

괭이. 전통 모양의 괭이보다는 이렇게 개량된 모양의 삽괭이를 훨씬 더 자주 쓴다. 골 타고나서 정리할 때, 그리고 비닐멀칭 씌울 때 필수다. 골 양 끝에서 두 사람이 비닐 끝자락을 발로 지그시 밟고 괭이로 흙을 모아 얹는다. 호흡이 맞으면 속도가 척척 붙으면서 신바람이 난다. 호흡이 안 맞을 땐 비닐이 울고 찢어지거나, 심한 경우 괭이자루가 날아다닐 수도 있다. 

낫. 부지런한 농부 집엔 낫에 쇠꽃 피는 일 없다는데, 우리 집 낫들은 얼마 못 가 죄다 녹이 슨다. 부지런한 농부 되기는 틀렸나보다. 사실 두둑은 비닐 멀칭 하고 헛골엔 부직포를 깔아 풀을 잡으니 낫을 쓸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낫이 바빠지는 건 가을걷이 때다. 고구마 줄기 걷어내야지, 콩대 베어야지, 들깨도 베어 뉘어놔야지... 낫질이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벼 벨 때다. 누렇게 익은 벼를 한 줌 가득 쥐고 잘 드는 낫으로 슥슥 베어나갈 때의 느낌이란... 콤바인이 미치지 못하는 논 가장자리만 낫으로 베어내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외발수레와 두발수레. 그동안 정말 많은 짐들을 나른 우리집 짐꾼이다. 두발수레는 운전하기는 편하지만 흙길에선 다니기 불편하고, 외발수레는 좁고 험한 길도 요리조리 잘 다니지만 초보자는 균형 잡아 운전하기가 어렵다. 재작년 여름이던가, 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수레 가득 따서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한순간에 삐끗, 전복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 때 흙바닥을 때굴때굴 굴러가던 빨간 토마토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곡괭이. 돌밭의 해결사다. 곡괭이로 돌덩이 캐내는 재미도 나중엔 꽤 쏠쏠하다.  

평탄기. 이 농기구의 진짜 이름이 뭔지는 모른다. 철물점 앞에 세워놓은 놈을 집어왔으니 주인에게 이름을 댈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이름도 모른 채 쓰고 있다. 우리끼리는 평탄기라고 부른다. 골을 타서 반반하고 평평하게 다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갈퀴. 갈퀴로 긁어모은 낙엽은 퇴비로 쓴다. 

파종기. 정식 명칭은 ‘모종 이식기’다. 감자나 땅콩 심을 때 사용하면 작업 속도가 몇 배는 빨라진다.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은 씨를 넣고 한 사람은 찰칵찰칵 집게를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심는다. 나중에 복토로 마무리만 해주면 된다. 고추나 토마토 같이 덩치 큰 모종을 옮겨 심을 때도 편리하다.  

앉은뱅이 의자. 역시 우리끼리만 부르는 이름이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농자재점 가서 “작업할 때 엉덩이에 붙이고 쓰는 의자 주세요.” 그러면 다 알아듣고 내다준다.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이런 물건도 다 파냐며 신기해한다. 그리고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어떤 용도로 쓰는 물건인지 짐작도 못한다. 둥근 스티로폴 조각을 고무줄로 엉덩이에 매달고 다니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이지만, 장시간 쭈그리고 앉아 일할 때 무릎과 허리에 오는 부담을 줄여주는 고마운 물건이다. 토마토 곁순 작업할 때, 시설 하우스에서 상추 딸 때 등등의 상황에서 필수다.  

비료통. 가방처럼 매고 다니며 밭에 비료나 씨를 뿌릴 때 쓴다. 이래 봬도 옆구리에 착 달라붙도록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이다. 작은 알갱이 형태로 되어있는 유박 퇴비나 석회를 뿌릴 때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