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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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쌀 직불금 사태를 보며 옛 일을 떠올리다 (2008.10.16)

백화골 2009. 3. 4. 13:07

3년 전쯤인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주변 땅들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몇 다리 건너 하우스를 임대해준다는 소개를 받고 주인을 만나러 갔다. 무슨 갈비집에서 주인과 만났는데, 낮부터 친구들과 한가로이 갈비를 뜯고 있는 모습하며 양복을 빼 입은 게 농민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땅 빌리는 얘기가 본론으로 접어들자 척 하니 계약서부터 꺼낸다. A4 용지 서너 장에 걸쳐 컴퓨터로 뽑은 것이 한 두 번 해본 일이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계약서 조건이 열이면 열 다 지주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논농업직불금은 땅 주인이 받는다'는 항목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빌리기로 한 곳은 하우스, 그럼 당연히 밭일텐데, 논농업직불금은 또 뭐야? 게다가 논농업직불금은 지주가 아니라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에게 정부에서 지급하는 농촌 보조금이 아니던가! 이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농촌 보조금을 챙겨먹고 사는 졸부들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상황을 정리해보니 논에다 보조금을 지원 받아 하우스를 지어 놓고, 그러면서도 논으로 계속 등록 시켜놓고 직불금을 받아 챙기는 사례였다. 게다가 하우스를 이러저러한 보조를 통해서 거의 공짜로 지어놓고 농사도 안 지으면서 임대료까지 챙겨먹고 있었다.

임대료도 상상을 초월하게 비쌌다. 차라리 하우스를 새로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행정기관에서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탈로 날만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엄청난 임대료와 어이없는 불법 계약서를 보고, 이 사람들이 귀농자를 완전 봉으로 보는구나 하며 화낼 기운도 없이 웃으며 일어섰다. 나올 때 보니 이 아저씨들 역시나 엄청난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까발려지고 있듯이 쌀직불금을 직접 농사짓는 사람이 아닌 땅주인이 받아 챙기는 경우는 사실 정말로 흔하다. 이점을 문제삼을라 치면 ‘그럼 땅 안 빌려줘’ 하고 나오니 땅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직불금도 못 받고 도지까지 내면서 논농사를 지어야 한다. 실사 조사를 나와 봤자 직접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실사 조사 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이처럼 농촌 보조금은 진짜 받아야할 가난한 농민들이 아니라 정보력 있는 부농이나 엉뚱한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사례가 허다하다. 농촌 보조금을 둘러싼 부정과 비리는 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 눈에도 쉽게 보일 정도이니 얼마나 많을까.

어쨌든 확실한 건 요즘 불거진 쌀 직불금 문제 때문에 농촌 사람들, 엄청 화났다는 사실이다. 평소 세상 돌아가는 소식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누구누구 차관 이름을 입에 올리며 길길이 날뛴다. 제발 이 기회에 쌀 직불금 문제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좀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