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0년 56

폭염 속 쌈채소밭 들깨밭 정리, 가지 말리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여름엔 무척이나 더웠겠죠? TV에선 ‘전국에 폭염 경보’ 운운하는 뉴스가 빠지지 않고 나왔을 테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올핸 왜 이렇게 더운 거야?” 하며 예전에 없던 일이라도 벌어진 듯 투정을 부립니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고요. 올여름 폭염은 유난히 지독하게 느껴지네요. 밖에서 30분만 몸을 움직여도 마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옷이 흠뻑 젖은 땀으로 무거워집니다. 폭우 뒤를 바로 뒤쫓아 온 폭염. 이 ‘폭’자가 얼른 떨어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새로 심은 모종들이 잘 견디지를 못합니다. 아침에 가보면 몇 개씩 죽어 있곤 해서 애를 태우네요. 죽은 모종을 몇 번씩이나 새 모종으로 땜질해서 갈아주고 있습니다. 쌈채소들은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엔 금방 꽃대..

벌에 쏘이고 집중 호우 맞고

전북 지역에 집중 호우가 내렸습니다. 지난 1주일 내내 계속 비가 내렸고 내일, 모레도 비 예보입니다. 오늘은 전국 곳곳에서 집중 호우가 내리고 있다고 하네요. 농사는 사람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잘 크던 가을 옥수수가 비에 절반 가량 쓰러졌습니다. 올해 우리 옥수수들의 운명은 비에 쓰러지는 것인가 봅니다. 일으켜 주면 또 폭우가 쏟아지고, 다시 일으켜 주면 또 비오고... 1주일을 반복하다보니 지치네요. 게다가 비 오는 날 수확하고 발송하는 게 힘든 일인데 지난주에는 내내 비가 내려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날은 덥고 비는 내리고 땀은 흐르고 일은 더디고… 이런 날의 행복은 저녁에 일 다 마친 뒤 시원하게 씻고 여름밤을 맞을 때입니다. 힘든 일 마치고 시원한 ..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2005년 2월에 생면부지 타향인 장수로 이사 와서 나름 지역 사람들과 어울려보겠다고 농민회도 가입하고 여기저기 모임도 나가봤지만,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직은 하얀 얼굴에 도시 티가 많이 나서인지 사람들이 경계하며 탐색하는 눈치가 역력했지요. 농사일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참 어려웠던 시절. 뜻밖에도 장수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먼저 연락하셔서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귀농한 걸 환영한다며 같이 지역 살리는 운동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손을 잡아 주셨어요. 읍내 시장통 뒷골목 식당에서 추어탕을 사주셨는데 맛이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선생님, 전국에서 처음으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승인해 주는 바람에 중징계를 당했던 장수중..

가을 농사 시작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계속 되는 날들입니다. 낮에 하우스에서 잠시라도 일하다가는 금방 어질어질 숨쉬기가 어려워지지요. 하지만 이런 여름날을 견딜 수 있는 건, 조금 있으면 알찬 열매를 수확을 할 수 있는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힘든 여름을 보내고 나면 가을이 참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가장 더운 여름의 정점에서 가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온 백화골이 녹색으로 가득합니다. 하늘도 예쁘고 우리 작물들도 참 아름답습니다. 일하면서 문득문득 바라보는 하늘, 맑은 공기, 잘 자라는 작물들이 보기 좋아요. 여름 옥수수가 수확을 2주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는 장마가 지독스럽지 않아서 옥수수가 많이 쓰러지지도 않고 잘 자랐어요. 옥수수가 익으면 반드시 찾아오는 고라니를 쫒기 위해 울타리를 쳤습니다. ..

고추에 구멍이 뚫리는 달 7월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로 시작되는 농민가가 여름이 되면 절절하게 새겨집니다. 낮에는 뜨거워 아침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새벽에 일어나 밭에서 동트는 걸 보며 상추를 따다보면 바람도 시원하고 정신도 맑고 참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 기분 좋은 상쾌함도 잠깐입니다. 해 뜬 후 몇 시간만 지나면 곧 지글지글 끓어오릅니다. 온몸을 둘둘 감싸고 더위와 싸우며 일하고 있습니다. 토마토에 줄 바닷물을 남해안에 가서 떠왔습니다. 모든 과채류는 바닷물을 30배에서 100배 정도 뿌려주면 당도가 높아집니다. 바닷물에 들어있는 풍부한 미네랄 성분 때문이랍니다. 바닷물을 뿌려주면 몸만 커지려는 영양성장보다 열매를 맺고 키우려는 생식성장이 더욱 활발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제 토마토 수확이 20여일..

장마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해마다 6월 말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되지만, 그 양상은 조금씩 다릅니다. 계속 주룩주룩 비가 내리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아니면 올해처럼 비가 아주 조금만 내리고 계속 흐린 날이 계속되거나, 장마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 일이 많아도 집에서 쉽니다. 하지만 올해는 날이 흐리고 비가 조금만 내리니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요즘 농민들 만나면 주로 하는 얘기가 오늘은 샤워를 몇 번이나 하며 일했다는 둥, 하루종일 땀 흘렸더니 어질어질하다는 등...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늘이 흐리니 하우스에서 일하기 좋습니다. 물론 끈적끈적 후덥지근하게 덥긴 하지만, 그래도 땡볕보다는 훨씬 편합니다. 밭에서 왠 가방을 매고 일하냐고요? 고추끈 매주는..

오디, 완두콩, 무당벌레

무더운 나날들입니다. 오전 아홉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우스 안 온도는 36도입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곁순 치는 일을 하다가 11시쯤 되니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느낌입니다. 하우스 안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를 보니 40도입니다. 한낮에 하우스 안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농업인들의 상식입니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가고,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또 많은 농민들이 이 상식을 무시하고 땡볕에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합니다. 시원한 아침저녁 시간에 일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줄지어선 일거리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 심은 브로콜리 모종도 더위를 참을 수 없는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땡볕에 하루가 다르게 오디가 까맣게 익어갑니다. 마당에 작..

토마토, 상추 심고, 풀 뽑으며 여름을 맞다

6월이 시작되자마자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고랭지 장수는 다른 지방처럼 심하게 덥지는 않아요. 그냥 낮 한 때 일하면 땀이 흐를 정도랍니다. 밤에 불 안 때고 자면 새벽에 추워요. 예년 같으면 5월이 지나가면서 일이 조금은 한가해졌는데 올해는 더 바빠지네요. 봄 냉해 때문에 조금 늦어진 일정과 기계 사용을 줄이면서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만 하며 지내는 나날들입니다.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이 최소 12~13시간입니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도시에서처럼 문득 문득 ‘도대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밀려오지 않아 좋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 이것도 농사일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토마토 모종을 짱짱하게 키웠습니다. 귀농 1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

폭염 속에서 삽질하는 일을 했습니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허리는 뽀개질 것 같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절정을 이루더니 갑자기 시원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동안 얼마 전 손님 치르느라 냉장고에 남아있던 맥주를 꺼내와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마침 이웃이 밭에서 막 수확했다고 갖다준 햇양파가 훌륭한 안주가 되었습니다. 맥주 한 병 딱 비우고 나니 비가 잦아들어 다시 밭으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