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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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오디, 완두콩, 무당벌레

백화골 2010. 6. 22. 07:38

 

 

무더운 나날들입니다.

오전 아홉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우스 안 온도는 36도입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곁순 치는 일을 하다가 11시쯤 되니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느낌입니다. 하우스 안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를 보니 40도입니다.

한낮에 하우스 안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농업인들의 상식입니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가고,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또 많은 농민들이 이 상식을 무시하고 땡볕에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합니다. 시원한 아침저녁 시간에 일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줄지어선 일거리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 심은 브로콜리 모종도 더위를 참을 수 없는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땡볕에 하루가 다르게 오디가 까맣게 익어갑니다. 마당에 작은 오디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오며가며 수시로 오디를 따먹습니다. 흙 묻은 손으로 오디를 따서 씻지도 않고 바로 바로 입속에 집어넣는데, 마치 동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고릴라가 된 기분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바로 나무에서 따먹는 오디맛은 6월의 행복 중 하나랍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가족회원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나온 게 바로 오디잼이구요.

올해도 밭일 하는 틈틈이 열심히 오디를 따다가 오디잼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 농산물 박스를 열어보시면 오디잼이 한 병씩 뽁뽁이에 둘둘 싸여 들어있을 거예요. 오디 나오는 철이 이렇게 바쁜 철이 아니라면 좀 더 많이 오디잼을 만들어서 많이 보내드릴 수 있을 텐데, 조금씩밖에 보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오디잼은 빵이나 비스킷에 발라서 먹어도 좋고, 시원한 물에 타서 오디냉차를 만들어 먹어도 좋답니다.

잘 자라는 오이, 고추, 호박에 진딧물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와줘요, 무당벌레!”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더니 며칠 뒤 정말 무당벌레가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몇 년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엔 진딧물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느긋하게 다잡고 기다리다보면 무당벌레가 결국 진딧물들을 싹 청소해준답니다. 무당벌레를 이용한 진딧물 방제법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게 흠입니다. 한두 그루 정도는 진딧물에 완전히 새까맣게 뒤덮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해충만 있는 게 아니라 해동물도 있습니다. 고라니가 고추를 뜯어먹고 간 흔적입니다. 사방에 맛있는 풀들이 널려있는 시절인데, 도대체 왜 밭에 들어와 줄까지 매어놓은 고추를 뜯어먹고 갔는지 고라니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한 그루만 뜯어먹고 간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요.

몇 년 고라니 때문에 골치를 썩이다 보니, 이제 고라니 발자국 전문가가 다 되어갑니다. “여기 발자국이 있군.” “이 길로 들어와서 저 길로 나갔어.” “나가면서 줄에 걸리니까 발버둥을 치다 갔군.” 나름대로 분석까지 해가며 고라니의 흔적을 쫓습니다.

고라니를 막으려면 울타리를 이중 삼중으로 꼼꼼하게 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동안 밭 둘레에 들깨도 심어보고(고라니가 들깨 냄새를 싫어한다고 해서), 밭 주변에 냄새가 고약한 목초액도 쳐보고, 사람 냄새 맡고 도망가라고 입던 헌옷가지도 걸어 놓아 보고 했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누군가 고라니 덫을 놓아보라고 해서 철물점에 사러 가기까지 했는데, 큼지막한 톱니가 박힌 강철 쇠덫이 너무 무시무시해 보여 포기하고 그냥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미운 고라니라지만 이런 쇠덫에 발목이 물려서 고통 받다 죽어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요.

이번 주부터 완두콩도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콩깍지 속에 사이좋게 줄지어선 예쁜 연두빛 완두콩은 오디에 이어 ‘6월의 기쁨’ 2탄입니다. 완두콩 먹는 방법은 동봉장에 정리해서 적어놓았습니다. 읽어보시고 참고해주세요.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시 살 때 한 번도 완두콩을 사먹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완두콩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워낙 먹는 식단이나 식재료 폭이 좁다보니 완두콩 같은 건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거예요. 그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육교 위에서 완두콩을 까서 파는 할머니들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완두콩들을 파실까,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해마다 6월이 되면 완두콩을 파는 사람이 되었네요. 단, 할머니들처럼 친절하지는 못해요. 콩깍지 채 보내드리니 꼬투리 까는 건 각자 해주셔야 합니다. ^^

장수 계북면 ‘사과의 꿈’ 농장의 성민이 형님이 갑자기 방문했습니다. 사과 과수원에선 요즘 한창 적과(열매를 적절히 솎아주는 것)하는 시기인데, 땡볕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적과 일을 하다가 말 그대로 너무 ‘열 받아서’ 머리 식힐 겸 잠깐 우리 마을에 놀러 왔답니다.

놀러 와서 하는 일이 우리 집 뒷마당에 심어놓은 수박 순 치는 일입니다. “저거 수박 아니냐!” “수박 순을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하더니 가위를 가져오라고 해서 직접 시범을 보여줍니다. 성민이 형님은 사과 농사짓기 전엔 10년 동안 수박 농사를 지은 사람입니다. 역시 이렇게 직접 농사 선배님에게 배우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합니다. 덕분에 올해 수박 농사가 잘 될 확률이 껑충 더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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