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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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백화골 2010. 8. 8. 22:40

2005년 2월에 생면부지 타향인 장수로 이사 와서 나름 지역 사람들과 어울려보겠다고 농민회도 가입하고 여기저기 모임도 나가봤지만,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직은 하얀 얼굴에 도시 티가 많이 나서인지 사람들이 경계하며 탐색하는 눈치가 역력했지요.

농사일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참 어려웠던 시절. 뜻밖에도 장수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먼저 연락하셔서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귀농한 걸 환영한다며 같이 지역 살리는 운동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손을 잡아 주셨어요. 읍내 시장통 뒷골목 식당에서 추어탕을 사주셨는데 맛이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선생님, 전국에서 처음으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승인해 주는 바람에 중징계를 당했던 장수중학교 교장 김인봉 선생님, 그 분이 엊그제 돌아가셨습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상에 눕기 전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지난 6.2 지방선거 전, 전라북도 진보 교육감 후보의 선거 사무실 개소식 날이었습니다. 교육 운동에 뜻을 같이 하는 장수 사람들이 전주까지 우루루 몰려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후보 사무실에 쭈삣쭈삣 서 있다가, 이왕 모였으니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김인봉 선생님의 뒤를 쫓아 아구탕 집에 갔었습니다.

“이 집 아구탕이 가격도 싸고 참 맛이 괜찮아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정말 맛있는 집이었지요. 모두들 선생님이 사주시는 아구탕을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데, 왠일인지 선생님은 한 숟가락도 뜨지 않으셨습니다. 장염으로 한 달 동안이나 밥을 제대로 못 드시고 계시다면서요. 어쩐지 많이 마르셨다 했더니 장염에 걸리셨었구나, 생각하면서 그냥 아구아구 아구탕 먹기에만 바빴지요.

두어 달 전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김인봉 선생님이 사실은 장염이 아니고 많이 아파서 강원도 어디로 요양을 가셨다는 소문이었어요. 당장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다른 병은 아니고 장염인데 곧 나을 거라고, 농사 잘 지으라고...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2주 전에야 선생님이 실은 간암 말기이고, 선거 운동이니 뭐니 해서 바쁜 사람들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장염이라고 둘러대며 숨기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인봉 선생님의 쾌유를 빌며 인터넷 카페도 만들고 지난 8월5일에는 ‘김인봉 선생님 쾌유를 비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음악회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사모님과 아드님, 따님이 급히 나가시더라구요. 전날 많이 회복되셔서 산책까지 하셨다는데 이날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셨다구요. 그리곤 그 다음날 새벽 운명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눈물이 나고 슬펐습니다. 오늘 고향이신 장수군 계북면 매개 마을에서 수목장을 치르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렇게 슬픈 노래인지 몰랐습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가사를 부르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뜻을 따라서요.

김인봉 선생님은 정말 배울 게 많은 분이셨습니다.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장수로 돌아와 교직 생활을 하시던 선생님은 호탕한 성격에 친구들도 많고 재밌게 사시는 분이셨대요. 장계 성당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만나신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농민운동을 하시게 되고 전교도 활동으로 해직을 당하십니다. 그 후 복직될 때까지 집에서 형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아이를 키우며 지내셨대요. 이때 사모님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복직하신 후 전북 각 지역을 돌아다니시다 다시 고향 장수로 돌아오십니다. 그리곤 2008년 교장 공모제로 평교사에서 교장이 되시고, 학교운영지원비를 폐지하는 운동도 앞장서서 성과를 내셨습니다. 전국 최초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승인해 정부로부터 무지무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가뜩이나 전국 꼴찌인 시골 아이들 일제고사 봐서 꼴찌 확인시키는 게 뭐가 교육이냐며 일제고사를 거부하신 거죠. 그래서 징계도 먹고 정직도 당하고.

김인봉 선생님은 참 겸손하고 편한 분이셨어요. 평생 차 한 대 굴리지 않다가 교장 선생님이 되신 다음엔 “나도 이제 교장도 됐고 했으니까 관용차 한 대 굴려야지” 하면서 어디서 구해온 낡은 중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출퇴근하시던 분. 그렇게 아낀 돈으로 별 볼일 없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항상 밥을 사주시던 분. 학생들에게 언제나 존댓말을 하시던 분. 교장이 된 후 제일 먼저 교장실을 사랑방으로 바꾸신 분. 아랫사람들한테는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었지만 윗사람들의 잘못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혼자 외로이 꼿꼿하게 싸우시던 분...

저희한테 참 밥을 많이 사주셨는데, 저희는 밥 한 끼 대접 못해드린 게 참 아쉽습니다. 오늘 장수 중학교에서 노제를 지내고, 수목장까지 끝낸 뒤 근처 나무그늘 밑에서 마을 부녀회 분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땡볕 아래서 한바탕 땀과 눈물을 흘리며 기운을 쏟아낸 뒤라 그런지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지더군요.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에게 얻어먹기만 한 셈입니다.

한동안 마음 한 켠이 허전할 것 같아요. 지역 운동이 무엇이지, 풀뿌리 운동이 무엇인지 말이 아닌 몸으로 그 답을 보여주신 선생님.

장수중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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