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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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벌에 쏘이고 집중 호우 맞고

백화골 2010. 8. 15. 14:47

전북 지역에 집중 호우가 내렸습니다. 지난 1주일 내내 계속 비가 내렸고 내일, 모레도 비 예보입니다. 오늘은 전국 곳곳에서 집중 호우가 내리고 있다고 하네요. 농사는 사람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잘 크던 가을 옥수수가 비에 절반 가량 쓰러졌습니다. 올해 우리 옥수수들의 운명은 비에 쓰러지는 것인가 봅니다. 일으켜 주면 또 폭우가 쏟아지고, 다시 일으켜 주면 또 비오고... 1주일을 반복하다보니 지치네요.

게다가 비 오는 날 수확하고 발송하는 게 힘든 일인데 지난주에는 내내 비가 내려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날은 덥고 비는 내리고 땀은 흐르고 일은 더디고… 이런 날의 행복은 저녁에 일 다 마친 뒤 시원하게 씻고 여름밤을 맞을 때입니다. 힘든 일 마치고 시원한 산바람 맞으며 맥주 한잔 마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름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농사가 참 어렵네요. 지난 2주간 모두 발송하려 했으나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수확량도 줄고 모양도 그다지 예쁘지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심은 놈들인데 수확 시기가 다 달라서 어렵기도 하구요.

10월에 수확할 양배추,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모종들이 힘겹게 뿌리내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신생아 돌보듯이 매일 매일 정성스레 물주고 벌레 잡아주고 있습니다. 원래 이놈들한테 달려들지 않던 벼룩잎벌레까지 출현한 탓에 방제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요 시기만 지나 활착하고 나면 금세 쑥쑥 잘 자랍니다. 가을에는 여름처럼 무름병도 안 오고 수확 시기도 균일하게 잘 자랄 거예요. 여름에 성적이 별로 안 좋았던 작물들이라 더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가을 배추, 양상추, 쌈채소 모종을 키우고 있습니다. 8월 한 달은 매 주말마다 일이 딱딱 정해져 있어요. 90일 작물, 80일 작물, 70일 작물 등 정식 이후 자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날짜를 조금만 못 맞춰도 수확을 못하게 됩니다. 너무 빨리 심으면 찬바람 맞고 맛있어 지는 가을 작물 특유의 맛이 나질 않고, 너무 늦으면 수확을 못하게 되니 날짜 보며 시기를 맞추며 일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한켠에 있는 벌집을 실수로 건드려서 벌에 쏘였습니다. 바로 뜸도 놓고 이웃이 프로폴리스도 발라주고 한 덕에 별 탈은 없었는데, 며칠 동안 손이 퉁퉁 붓고 뜸을 놓았던 자리에 상처가 크게 나서 아물지를 않네요. 지난 주 내내 비오는 날 일하는 바람에 계속 젖어 있어서 더더욱 회복이 덜 되나 봅니다. 그래도 재작년에 똑같은 땅벌에 쏘였을 때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응급실에까지 가고 고생했었는데 그래도 면역력이 높아졌나봅니다. 손만 붓고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2차 오이가 한창 크다가 기세가 꺾이고 있습니다. 농작물 자라는 걸 보면 마치 사람살이를 보는 듯해서 새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미친 듯이 기세 좋게 뻗어 올라가다 어느 순간 성장세가 팍 꺾이고 금새 노쇠해 버립니다. 청춘 시절은 아주 짧지요.

올해 유독 고추 농사가 잘 됐습니다. 역대 최고로 잘 돼서 여유가 많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생협 같은 데 납품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그냥 많이 나오는 것은 회원들에게 덤으로 더 보내드렸어요. 그랬더니 다들 좋아하시네요. 이런 게 농산물가족회원제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아무튼 그렇게 기세 좋게 잘 자라던 고추도 이제 슬슬 중년으로 접어드나 봅니다. 기세가 한풀 꺾이고 수확량도 줄어드네요.

토마토가 이제 2주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잎곰팡이병이 일찍 찾아와 끝물이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넉넉히 심은 덕에 회원들에게 부족함 없이 토마토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비가 계속 내리지만 않으면 더워도 그럭저럭 일하기 좋은 철인데 비가 계속 와서 좀 답답합니다.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도 있고 재밌는 시절입니다. 봄가을처럼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도 않고요. 이제 조금만 지나면 찬바람이 불 것 같아요. 여름의 막바지에 열심히 일하면서 멋지게 가을을 맞이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