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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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고추에 구멍이 뚫리는 달 7월

백화골 2010. 7. 7. 23:58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로 시작되는 농민가가 여름이 되면 절절하게 새겨집니다. 낮에는 뜨거워 아침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새벽에 일어나 밭에서 동트는 걸 보며 상추를 따다보면 바람도 시원하고 정신도 맑고 참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 기분 좋은 상쾌함도 잠깐입니다. 해 뜬 후 몇 시간만 지나면 곧 지글지글 끓어오릅니다. 온몸을 둘둘 감싸고 더위와 싸우며 일하고 있습니다.

토마토에 줄 바닷물을 남해안에 가서 떠왔습니다. 모든 과채류는 바닷물을 30배에서 100배 정도 뿌려주면 당도가 높아집니다. 바닷물에 들어있는 풍부한 미네랄 성분 때문이랍니다. 바닷물을 뿌려주면 몸만 커지려는 영양성장보다 열매를 맺고 키우려는 생식성장이 더욱 활발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제 토마토 수확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바닷물을 뜨러갈 시간이 안 나서 노심초사하다가 지난 주말에 열일 제쳐 놓고 다녀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토마토에 바닷물과 계란껍질 칼슘(계란 껍질을 현미식초에 용해시킨 것)을 섞어서 뿌려주니 토마토가 이렇게 활짝 일어납니다. 전체적으로 생기가 도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방울토마토가 익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조금씩 따기 시작해 다다음주 쯤에는 발송할 수 있겠네요. 불그레 익어가는 토마토를 보니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이 노린재란 놈이 극성이네요. 열매에 붙어 즙액을 빨아먹고 흉한 자국을 남기는 아주 고약한 해충입니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정말 여러 가지 해충들이 많지만, 이 노린재란 놈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더 고민입니다. 그냥 발견하는 즉시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히 여기고 자연과 공생하며 사는 것이 농부 같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곤충을 죽이고 수백 포기의 잡초를 뽑아냅니다.

아무리 해충이라도 연달아 살생을 하는 게 그리 기분 좋을 리 없지요. 찜찜하고 진저리가 처집니다. 하지만 노린재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보노라면 도저히 그냥 살려보낼 수가 없답니다.

7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담배나방 유충이 한 짓입니다. 우리는 뽕뽕이 벌레라고 부르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7월 초부터 고추에다 뽕뽕 구멍을 뚫어놓기 시작합니다. 1주일에 두세 번씩 기피제를 쳐주기는 하는데 완전 방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피망에도 뽕뽕이 벌레 피해가 왔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피망 맛을 봤습니다. 다른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벌레 먹은 놈들은 다 저희가 먹습니다.

올해 농사가 참 잘 된다고 생각하던 차에 두 번째로 심은 브로콜리 농사가 망했습니다.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잎도 잘 자라고 병충해 방제도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딱 1주일 방심한 탓에 무름병으로 브로콜리를 채 10%도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주일간 장마로 해가 거의 안 떴는데, 막판에 관리를 소홀히 한 게 문제였습니다.

원래 어려움이 있어야 배우는 게 있는 법이라지요. 이번에도 한 수 배웠습니다. 꽃봉오리가 예쁘게 올라온 상태에서 얼룩덜룩 짓물러져 버린 브로콜리들을 한동안 그냥 바라보다가 싹 뽑아서 걷어냈습니다. 병충해나 기상재해 등으로 농작물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하는 것은 농가마다 비일비재한 일이라지만, 이렇게 밭 정리를 할 땐 참 서럽고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요즘 너무 자만했구나 하는 반성이 됐습니다. 브로콜리 보낸다고 예고까지 했는데 가족회원분들께 발송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2차 브로콜리 실패를 만회하고자 3차로 심은 브로콜리 관리를 더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자신이 없네요. 사실 브로콜리는 여름에 키우기가 어려운 작물입니다. 작년에 매일매일 손으로 벌레 잡아가면서 여름 브로콜리 재배에 성공한 적이 있어서 올해도 별 걱정 없이 대담하게 심은 게 문제였나 봅니다. 가족회원 분들이 브로콜리를 아주 좋아하시니까 봄여름가을 계속 보내야지, 하고 너무 욕심을 낸 것도 같아요. 일단 욕심을 버리고 혹 안 되더라도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보려고 합니다.

약간씩 짓물러서 발송은 못하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브로콜리들은 따로 선별해서 이웃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닭 키우는 이웃집에서 역시 모양이 안 좋아 팔기는 어렵지만 먹는 데는 지장 없는 달걀을 나눠줍니다. 여름이 되면 이웃들과 이런 저런 농산물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모두 약간의 문제(?)를 가진 것들이지요. 오늘 백화골 점심 식단은 짓무른 브로콜리 데침, 초장을 곁들인 벌레 먹은 피망, 탁구공 사이즈 달걀찜이었습니다. 후식으로는 윗집에서 나눠준 배꼽썩음병 걸린 토마토를 먹었습니다.

요즘에는 6시쯤 일찍 저녁을 먹고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합니다. 여름엔 이때가 일하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풀 뽑고 벌레 잡다 보니 어두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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