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유기농 제철꾸러미/2016년~2021년 61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스무 번째 주 발송, 추석

완연한 가을입니다. 요즘은 하루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장화를 신을 때마다 바로 신지 않고 거꾸로 뒤집어 들고서 한참 톡톡 털어주곤 합니다. 밤새 메뚜기나 여치 같은 풀벌레가 기어들어가서 장화 속을 아늑한 하룻밤 거처 삼아 늦잠을 자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요. 밭에서 만나면 소중한 배춧잎을 야금야금 뜯어먹고 가는 웬수들이지만, 쌀쌀한 가을밤을 피해 장화 속에서 옹송그리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지요. 농사에 해를 끼치는 생물이라도 ‘완전박멸’이 아니라, 어우렁더우렁 어떻게든 부대끼며 같이 살아보자는 것이 어찌 보면 유기농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주에 미리 말씀드린 대로 이번 주가 추석 전 마지막 발송입니다. 9월 마지막 주와 10월 첫째 주 2주 동안 배송이 없고요, 21번째 꾸러미는..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아홉번째 주 발송, 밤고구마

매년 추석이 돌아올 때마다 백화골 꾸러미도 짧은 방학 시간을 갖습니다. 추석 연휴가 끼어있는 주와 추석 연휴 바로 전 주, 이렇게 2주 동안 발송을 중단하곤 하는데요. 추석 전 주는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택배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면서 제 날짜에 택배가 배달되지 않는 발송 지연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아예 발송을 하지 않는답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추석이 늦은 편이라 추석 방학도 느지막이 갖게 되었습니다.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쉽니다. 그러니까 20번째 꾸러미는 다음 주에 평소처럼 배달될 예정이고요, 이후 2주간 쉬었다가 10월 두 번째 주에 21번째 꾸러미가 배달될 예정입니다. 연휴 때 여행 가시는 분들도 많고 하니까 택배 배달 일정을 일찌감치 확인해 두시는 것이 편..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여덟번째 주 발송, 가을 하늘

요즘 티 한 점 없이 푸르른 가을 하늘이 참 보기 좋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도 이곳 백화골과 비슷한 하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볕 아래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호강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하늘과 산의 고운 자태, 햇볕에 반짝이며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송 숲, 하루 종일 배경음으로 들리는 가을벌레 소리들, 모두모두 커다란 보자기에 잘 담아서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택배 상자 속에 이런 것들은 담을 수가 없기에, 대신 그런 하늘과 햇볕 아래서 자란 9월의 채소들을 대신 보내드립니다. 오이와 부추로는 겉절이를 만들고, 들깨가루 한 숟가락 넣어 구수한 고구마순 볶음도 만들어보세요. 소박하면서도 풍성하게 차린 여러..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일곱번째 주 발송, 쇠비름

몇 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숙제하듯 내리던 비가 이제는 좀 진정된 듯합니다. 계속된 비 때문에 진창이 된 밭에서 일하기도 힘들었고, 몇몇 작물들은 잎이 녹아내리거나 곰팡이가 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새로 심은 가을 작물들은 매일매일 비에 신이 나서 잘 자라고 있답니다. 여러 작물들을 키우다 보니 똑같은 날씨에도 웃는 작물이 있고, 우는 작물도 있네요. 변화무쌍한 자연에 어느 정도 초연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농부의 첫 번째 과제인 것 같아요. 이번 주에는 그 어떤 날씨에도 꿋꿋하게 잘 자라는 신비의 야생초, 쇠비름을 보내드려 봅니다. 보통 산나물 들나물은 잎이 연한 봄에 뜯어서 먹는 게 일반적인데, 쇠비름은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 먹어도 좋은 나물이랍니다. 어디서나 흔하게 잘 자라기 때문에 오히..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여섯번째 주 발송, 갈색날개매미충

십 오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오다 보니, 매년 비슷비슷한 해충들을 똑같이 만나게 됩니다. 고추에는 진딧물, 배추에는 청벌레, 가지에는 이십팔점 무당벌레,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올해는 농사짓기 시작한 이래 처음 보는 곤충을 만났습니다. 이 곤충이 올해 갑작스레 얼마나 많아졌는지, 나뭇가지에 수 십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있기도 하고, 창문 방충망이나 집 벽에도 몇 마리씩 붙어있습니다. 갈색날개매미충. 2010년 이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뒤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외래 해충이라고 하네요. 백화골 근방에선 작년까지만 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어딜 가나 이 갈색날개매미충이 득실득실 합니다. 농사일을 하다 보니 기후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생태계의 변화 속도도 아찔할 만큼 빠르다는 것이 실감납니..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다섯번째 주 발송, 늦장마

지난주에 택배 발송과 관련해 작은 사고가 있었답니다. 목요일 오후 우체국으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이 왔습니다. 수요일에 발송한 백화골 꾸러미 상자들을 포함해, 장수 지역 택배 상자들을 싣고 서울 쪽으로 올라가던 우체국 탑차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화물 절반 이상이 파손되어 배송이 어렵게 되었으니, 혹시 택배를 못 받은 회원들은 없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목요일에 택배 받으시는 회원분들에게 얼른 전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는데, 답문자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택배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인가, 하고 문자들을 열어보다가 백화골 농부들은 감동하고 말았어요. “우리 집은 잘 도착했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운전기사분은 무사하신가요? 큰 사고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수십 통의 답문자들이 모두 운..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네번째 주 발송, 방울토마토가 방울방울

태풍이 온다고 해서 바싹 긴장하고 있다가 다행히도 옆으로 비껴간 덕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리고 태풍 추이를 지켜보며 본밭에 내다 심기를 미루고 있던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을 주말 동안 모두 심었답니다. 이미 한 달 전에 씨를 넣고 키워왔던 모종들입니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가을 농사를 준비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내년 농사를 계획하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예보를 들여다볼 만큼 실시간으로 변하는 날씨에 민감하면서도, 동시에 늘 계절을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농사랍니다. 현재와 미래가 늘 겹쳐지는 셈입니다. 농사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들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조만간 무럭무럭 자라날 가을 채소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 듯이 솔솔 불어올 가을 소슬바람을 생각하며 지금의 삼복더위..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세번째 주 발송, 녹아내리는 여름

여름을 대표하는 채소와 과일들은 많이 있지요. 그중에서도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백화골 농부는 첫 번째로 옥수수를 꼽겠습니다. ‘여름’ 하면 노랗게 잘 익은 옥수수가 떠오르고, ‘옥수수’ 하면 매미가 하염없이 울어대는 뜨거운 한여름이 떠오릅니다. 옥수수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채소라고 생각합니다. 한 끼 식사로 때우기 위해 먹는 음식도 아니고, 반찬으로 먹으려고 힘들여 요리하는 채소도 아니지요.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한 솥 가득 쪄주시던 간식거리, 잠도 안 오는 열대야에 바람 드는 골목 평상에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나눠 먹던 밤마실 야식. 여러분은 옥수수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번 주에 보내드리는 백화골 옥수수가 정겨운 추억까지 함께 배달해 드렸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번 ..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두번째 주 발송, 폭염과 장맛비

회원분들에게 농산물 상자에 같이 넣어 보내드리는 안내장을 프린터로 출력하는데 며칠 전부터 자꾸만 중간에 용지가 걸립니다. 몇 번을 낑낑대며 종이를 억지로 잡아 빼내고 다시 출력하기를 반복하다가 답답해서 프린터 회사 A/S 센터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담당자분이 한숨을 푹 쉬면서 하루 종일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고 있다고 하시네요.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종이가 습기를 먹어서 자꾸만 용지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왠지 조금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요즘 많이 더우시죠? 매년 겪는 더위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때마다 새삼스레 놀라곤 합니다. 맞아, 여름이 이렇게 더운 거였지, 하고 말이에요. 땡볕에 밭에서 일하는 농부도 덥지..

2017년 백화골 유기농 제철꾸러미 열한번째 주 발송, 푸른 채소

“한국 사마귀는 아주 작네요. 태국 사마귀는 이보다 훨씬 커요.” 백화골에는 늘 농사일을 도와주는 세계 자원봉사자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데요, 요즘 농사 도우미로 머물고 있는 태국 친구가 밭에서 사마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네요. 모르시는 말씀! 채소도 떡잎부터 시작해 거대한 크기로 자라나듯이, 곤충도 시절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답니다. 7월의 사마귀는 아직 새끼손가락만 한데다 색깔도 연두색에 가깝지만, 10월이 되면 진녹색에 몸집이 거의 대여섯 배 가까이 커지지요. 어디 사마귀뿐일까요. 농사일을 하다보면 모든 곤충들이, 나무가, 풀이, 그리고 사람도 시절에 따라 조금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 것을 늘 느낄 수가 있답니다. 백화골 채소들도 마찬가지고요. 철에 따라 나오는 채소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