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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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심고, 거두고, 말리고... 가을 농사의 즐거움

백화골 2014. 9. 16. 06:38

 

 

여름은 금세 지나갔습니다. 8월 내내 비를 뿌려 제대로 된 더위 한번 못 느끼게 하던 여름이 가고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백화골에서는 추석 택배 대란을 피하기 위해 제철꾸러미 발송을 쉬는 2주 동안 열심히 가을 농사 준비를 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파랗게 변해가는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올해 마지막 작물들을 심고, 거둘 것 거두고, 쨍쨍한 가을볕에 이것저것 내다 말리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새 9월 중순, 이제 한달 반 정도면 올해 농사도 마무리입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 농사를 꼼꼼히 정리해나갈 시기입니다.

 

 

가을 작물 심기 전에 유기물을 밭에 넣어줍니다. 유기농은 땅심 살리기가 기본이기 때문에 주변의 풀이며 정리한 작물 줄기 잎 하나도 소중한 자원입니다. 밭 정리하면서 나온 토마토 줄기를 잘게 잘라서 밭에 넣어주고 삽과 쟁기로 골을 만들었습니다. 새로 만든 밭에 열무, 청경채, 비타민채, 시금치 씨앗을 파종했습니다. 10월 중순 정도에 수확 예정입니다.

 

 

 

가을 상추와 양상추, 쌈배추 모종을 키워서 밭에 심었습니다. 왕귀뚜라미와 메뚜기가 자꾸 새싹을 갉아 먹습니다. 어렵게 살아 남은 새싹들이 조금씩 커져갑니다. 찬바람 맞으며 맛있는 쌈채소로 자라겠지요.

 

 

살짝 매운 토종 고추를 수확해서 말렸습니다. 건조기 없이 태양초로만 고추를 말리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요즘 날씨가 워낙 쨍쨍하고 건조해 잘 마릅니다. 가지와 애호박도 썰어서 말렸습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듬뿍 햇살을 밭으며 꼬들꼬들 예쁘게 말라가는 농산물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흐뭇합니다.

 

 

막 싹이 나오는 열무와 청경채를 왕귀뚜라미와 메뚜기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얼른 한랭사를 씌웠습니다. 일종의 모기장 같은 것인데, 햇볕과 바람과 물은 통하지만 벌레의 공격을 막아주기 때문에 소규모 유기농 농사를 지을 때 꽤 활용도가 높은 자재입니다.

 

 

한창 기분 좋게 농사일을 하다 수확을 코앞에 두고있는 밤고구마 밭에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만 해도 싱싱한 고구마순이 가지런히 뻗어있던 고구마밭이 포크레인으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운좋게 피해왔던 멧돼지들의 습격을 당한 것입니다. 멧돼지는 무리를 지어 떼로 몰려 다니는 데다 워낙 먹성이 좋기 때문에 하루만에 밭을 초토화시키곤 합니다. 힘이 좋고 영리해 울타리를 뚫고 들어오는 건 녀석들에겐 식은죽 먹기지요. 한달 전쯤에 잘 익은 옥수수도 싹 먹어 치우더니 이제 고구마까지. 1년 고구마 농사가 하루밤 만에 멧돼지 뱃속으로 쏙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알아보니 이 멧돼지 무리들이 요즘 이 근방을 쏘다니며 여러 이웃 농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하네요. 노랗게 고개 숙인 논을 온통 짓밟아버리는가 하면, 고구마밭과 콩밭을 결딴내기도 하고요. 피해 농민들의 신고로, 군청에서 운영하는 유해조수피해방지단의 포수들이 조만간 마을에 와서 사냥을 할거라는 소식입니다. 그 많은 놈들을 다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멧돼지는 정말 무서워요!

 

 

그러고 보면 야콘은 정말 키우기 쉬운 작물인 것 같아요.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곤충들도, 야생동물들도 야콘만은 건드리지 않거든요. 올해는 야콘이 자라기 좋은 날씨였는지 거의 작은 나무 만큼이나 잘 자랐습니다. 야콘을 캐기 전 이번주에 우선 야콘잎부터 보내드리고 있어요. 씁쓰름하면서도 부드럽고 향긋한 향이 별미이지요.

 

 

땅콩과 배추,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무우, 콜라비 등은 아직까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라니와 멧돼지 때문에 불안해서 땅콩 수확부터 부지런히 시작했습니다. 꿩과 들쥐와 땅속 벌레들이 벌써 다 까먹고 껍질만 남겨놓은 곳도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이 먹을 땅콩도 넉넉히 남겨놓았네요. 다른 야생동물들은 멧돼지에 비하면 정말 얌전한 편인 것 같아요.

 

 

수확의 계절 가을. 비록 심은 것을 다 거두지 못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을 하늘과 가을 햇살 하나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지는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