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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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귀농 10년 행복한 한 해 농사 출발!

백화골 2015. 2. 23. 12:34

올 듯 말 듯 봄이 주변을 기웃거리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은 어서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지개를 켜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백화골 농부들은 귀농한 지 만 10년을 맞이하여 올해 더 행복한 마음으로 농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왠지 10년이란 말이 뭉클하네요. 장수에 와서 처음엔 좀 고생을 했지만, 좋은 선배 농부들을 만난 덕에 고향마을에 사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유기농으로 건강하게 농사 짓고 살자던 결심도 이루고, 겨울마다 세계를 여행하며 행복하게 살자던 꿈도 이루었습니다. 서울에서 살 때에 비하면 수입은 턱없이 적지만,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며 그다지 소비할 것이 많지 않은 환경이기에 가난해도 행복한 농촌살이입니다. 백화골이 자리잡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 회원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015년 백화골 농사는 낙엽을 모으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유기농장을 체험하러 온 프랑스 친구 카트린과 함께 볕 좋을 때마다 백화골 산을 뒤지며 낙엽과 부엽토를 긁어 모았습니다. 아침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였지만 산을 오르내리다보면 금세 몸이 풀리더군요. 깨끗한 산에서 모은 낙엽과 부엽토는 땅심을 키우는 데 최고로 좋은 자연 퇴비입니다.

 

 

땅심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유기농 농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요. 커다란 포대 자루에 모은 낙엽과 부엽토를 비닐하우스 안에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 땅에 보약 먹이는 농부의 뿌듯한 마음으로 2015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씨앗에 발이 달렸어요

 

 

한국의 수많은 농가들이 매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농사일 중 하나가 바로 고추 씨앗 파종일 거예요. 백화골에서는 고추 씨 넣기 전 하우스 안 배수관 묻기, 부엽토와 낙엽 긁어 모으기 등의 일을 하긴 했지만, 역시 키우는 작물과 직접 관련된 농사일로는 고추씨 파종이 올해의 가장 첫 일이었답니다.

 

 

살짝 매운 토종 고추, 매운 맛이 하나도 없는 오이 고추, 아삭이 고추, 꽈리고추, 청양고추, 여러 색깔의 파프리카까지... 고추 집안은 사촌들도 많아서 종류별로 분류해 일단 따뜻한 방 안에서 촉촉하게 물에 불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며칠 아랫목에서 따땃하게 몸을 지지던 고추 씨앗들이 하나 둘 발을 달기 시작합니다. 농사꾼들이 쓰는 말로 촉 나왔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발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요 하얗고 귀여운 발이야말로 씨앗이 자라나는 첫 번째 걸음마인 셈이니까요.

 

흔히 식물은 동물과 달리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 발이 땅 속에서는 얼마나 자유자재로 잘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이 작고 하얀 발은 머잖아 북실북실한 뿌리로 자라나 올 여름 내내 땅 속을 힘차게 뻗어나가며 맛있는 고추 열매를 맺게 해줄 겁니다.

 

새싹

 

 

아침에 모종 하우스에 가보니 어느새 고추와 배추, 브로콜리, 양배추 싹이 쏙쏙 올라왔습니다. 며칠 전 불린 씨 틈새로 빠꼼히 내밀었던 하얀 발은 지금쯤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길고 긴 뿌리로 자라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흰 눈이 쌓여있는 회색빛 겨울에 작은 연둣빛 새싹들은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 어느 별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