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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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바람 맞은 밭 복구 작업 중

백화골 2014. 6. 4. 23:19

오늘은 지방 선거일. 아침 일찍 면 소재지 체육관에 가서 투표하고 돌아온 뒤, 바로 밭으로 출근했습니다. 바람 맞은 밭 긴급 복구 작업 때문입니다.

 

이번 주는 수요일과 금요일이 공휴일! 회사 다니시는 분들에겐 꿀맛 같은 한 주겠지만, 저희에겐 비상사태나 다름없었습니다. 공휴일에는 택배 접수도, 배달도 안 되기 때문에 이번 주에 실질적으로 택배를 접수할 수 있는 날은 월요일 밖에 없었거든요. , , 3일에 나눠서 하던 제철 꾸러미 발송 작업을 이번 주엔 어쩔 수 없이 월요일에 한꺼번에 몰아서 했습니다. 일요일 밤을 거의 꼴딱 새워가며 포장 준비 작업을 하고, 월요일 오전 내내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채소 수확 및 포장 작업을 한 결과, 다행히도 우체국 택배 접수 마감 시간인 3시 전에 모든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백화골 농장에 머물고 있던 싱가폴 친구들의 야무진 손끝이 큰 도움이 되었지요.

 

 

,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오전 내내 흐렸다 개었다 변덕을 부리던 날씨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보에도 없었던 강풍이 갑자기 시작된 겁니다. 태풍 오는 철도 아니고 그냥 바람 좀 세게 불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닐하우스가 펄럭이는 폼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마당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농기구들과 집기들을 겨우 붙잡아 고정시켜 놓고, 비닐하우스에서 유난히 펄럭임이 심한 곳 끈을 다시 당겨 묶고 일단 집안으로 대피해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서 눈을 뜨고 있기도, 걸음을 제대로 옮기기도 힘들 정도였거든요.

 

 

바람이 잦아든 다음날, 밭의 피해 상황을 점검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비닐 멀칭이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진 곳이 몇 군데 있고, 풀을 잡기 위해 깔아놓은 부직포가 반 이상 벗겨져 여기저기 뒤엉켜 있습니다. 아예 부직포가 공처럼 뭉쳐져서 밭 근처 산 속에 처박혀 있는 놈들도 있더군요

 

 

 

옥수수는 다 쓰러져 있고, 부직포가 벗겨지면서 부러뜨렸는지 가엾게도 목이 잘린 고구마와 야콘이 즐비합니다

 

 

고추 지주대도 부분부분 옆으로 쓰러졌고, 몇 개는 뽑혀있기까지 하네요. 아직 줄기가 굵어지기 전인 어린 고추들도 많이 꺾어졌습니다.

 

 

단호박도 뽑혀져 죽어버린 것이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고, 이제 막 싹이 나온 어린 껍질콩은 하도 바람을 많이 맞아서 불쌍하게도 구겨놓은 휴지뭉치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 놈들이 앞으로 죽을지 살지 잘 모르겠네요. 허브 작물로 심은 바질도 통째로 꺾어져 죽어버린 놈들이 꽤 많습니다.

 

 

가장 피해가 심한 작물은 당근인데, 반 이상은 부러져 죽은 것 같아요. 한창 예쁘게 올라오던 놈들이 다 뽑혀서 날아가 버리고 빈 구멍만 남아있네요. 이번 강풍이 불기 전까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줄기가 새들새들 약해져 있는 상태였었는데, 갑자기 강풍을 맞아 이렇게 맥없이 부러져 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저희 밭 정도의 피해는 피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바로 옆 마을 이웃의 토마토 하우스입니다. 바람이 얼마나 셌는지 실감이 나시지요. 토마토 하우스 옆 이웃의 인삼밭도 차광막이 쓰러져 엉망이 되어있고, 그 건너 밭 아는 형님네 수박밭도 가림막이 다 벗겨지고 찢어져 손해가 막심할 듯합니다. 오늘 들은 소식에 의하면 장계면에선 대규모 첨단 하우스가 파손되었다고 하네요.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복구 작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흔히 하는 말로 농사만큼 정직한 일이 없다, 땀을 흘린 만큼 땅은 되돌려준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몇 년 농사짓다 보면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수십 수백 시간의 고된 노동이 단 한 두 시간 만에 제로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것이 또한 농사일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계산은 농사꾼에겐 금물입니다. 그저 하늘이 짓는 농사, 그 밑에서 최선을 다할 뿐. 자연재해나 병충해가 싹쓸이 하고 지나가더라도, 바보처럼 그냥 또 밭으로 나와 납작 엎드려 일하기.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농사짓는 사람으로서의 최고 경지인 이 바보 농사꾼에 저희도 조금씩 더 가까이 가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