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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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올해 첫 모종 옮겨심기 한 날

백화골 2014. 3. 16. 23:59

 

장수 사람들은 3, 4월을 믿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아무리 올해는 봄이 이르다는 둥, 봄꽃이 활짝 피었다는 둥 하는 말들이 들려온다 해도 말이에요. 3월에 폭설이 쏟아지는 건 아주 흔한 일이고, 4월에도 어느 날 갑자기 눈발이 날리거나 얼음이 꽁꽁 어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요. 불과 이틀 전에도 하루종일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 세상에 갇혀 있었답니다.

 

 

하지만 확실히 삼월의 눈이 다르긴 하네요.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눈 세상이 불과 이틀 만에 이렇게 말끔하게 변해버렸으니까요. 어제 하루종일 눈 녹아내리는 소리가 졸졸졸 요란하게 들리더니, 오늘은 멀리 보이는 덕유산 꼭대기와 응달진 곳 말고는 눈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기예보부터 살펴봅니다. 날씨가 확 풀려서 오늘, 내일, 모레까지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날들이 계속될 전망이네요. 그동안 육묘 하우스에서 잘 자라고 있던 첫 모종들이 본 밭으로 나가기 딱 좋은 때입니다. 첫 모종을 심을 하우스는 이미 깊이 갈아엎기와 거름 내기 등의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입니다. 관리기로 골을 만들고 괭이를 이용해 울퉁불퉁한 부분을 평평하게 다듬어 골 모양을 예쁘게 만듭니다.

 

 

땅심을 키워 유기농 농사짓기 좋은 밭으로 만들기 위해 겨울동안 자라게 하던 호밀을 갈아엎고 만든 밭이라 드문드문 녹색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네요. 골을 다듬으면서 괭이 끝에 걸리는 돌들이 있으면 골라서 하우스 밖으로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흙 속에서 왠 도자기 조각이 나옵니다. 도자기 조각에서 비롯된 상상력은 구한말, 조선시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멀고 먼 옛날, 선배 농부님께서 이곳에서 새참 막걸리를 드시다가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를 보고 놀라서 깨뜨린 술 호리병 조각일까? 그런데 실은 농사짓다 보면 이런 도자기 조각들을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랍니다. 예전 살던 마을 근처의 어떤 이장님 한 분은 밭 갈다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질그릇 하나를 발견해서 개밥그릇으로 유용하게 쓰셨다는 얘기도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 밤마다 따뜻한 전기 열선에 비닐 터널, 두꺼운 담요 이불까지 덮어주고, 낮엔 꼬박꼬박 이불 개서 햇볕 쬐게 해주면서 온도 습도 세심하게 맞춰가며 곱디곱게 키운 모종들입니다. 오늘 드디어 본밭으로 나가게 될 첫 모종은 배추, 브로콜리, 양배추, 컬리플라워. 모두 추위에 강해 언제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질지 모를 장수의 3, 4월을 무사히 버틸 수 있는 놈들이랍니다.

 

 

본밭으로 내가기 전 마지막으로 모종에 물을 흠뻑 줍니다. 험한 세상 밖으로 어린 모종을 독립(?)시키는 농부의 마음은 늘 조금 불안합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뿌리내림을 잘 못해서 시들시들해지거나 누렇게 뜨는 건 아닐까? 너무 추워서 냉해라도 입으면? 하지만 밖으로 내놓기 불안하다고 해서 계속 온실 속에서만 키우면 결국엔 좁은 육묘 틀 속에서 크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리고 말 테지요.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타이밍을 잘 맞춰서 모종을 본밭에 옮겨 심는 것은 농사일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랍니다.

 

 

잘 자란 모종은 그냥 쑥 잡아 올리면 쉽게 뽑혀져 나옵니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비닐 멀칭을 해놓은 골에 한 개씩 옮겨심기를 합니다. 일단 옮겨심기를 시작했으면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너무 추워지기 전에 옮겨심기를 다 끝내고 물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손이 안 보이도록 사샤삭~ 허리 아프고 어깨 아픈 건 잊고 서둘러 모종 심기에만 열중하다보니 어느새 복토까지 다 끝이 났습니다.

 

 

,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중 터널을 씌우기 위한 활대를 꽂아줍니다. 하우스 안에 심었다고 방심했다가 갑작스레 뚝 떨어지는 3, 4월 날씨에 몇 번 낭패를 본 다음부터는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이중터널을 설치해주고 있습니다. 스프링클러를 돌려 물을 흠뻑 주고, 작년에 썼던 이중터널용 비닐을 창고에서 꺼내 잘 덮어주는 일까지 마쳤더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기분 좋은 올해 첫 모종 옮겨심기 한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임 하나. 산골의 봄은 조용하지 않답니다. 오늘 일하는 내내 주위에서 배경음악을 깔아준 개구리와 새들 소리, 같이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