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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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평화롭게 하나되는 마을 대동회

백화골 2011. 12. 14. 22:44

어제 저녁에 마을 반장 성환이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우리 마을은 가구수가 15가구가 안 되어서 옆 마을 소속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이장이 아니라 반장이 있습니다). 내일 마을 대동회가 있으니 점심 시간 때즘 내려오라는 것이었어요. 대동회! 일반 마을에서 하는 대동회엔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이것저것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한테 10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내려오랍니다. 점심때 모이는 줄 알았는데, 역시 시골 분들의 시간 개념은 무척이나 이릅니다. 얼른 경로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모인 사람은 총 열두 명 정도. 대동회란 1년에 한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마을 자금 결산을 하고, 다음 해 이장이나 반장 등 마을일 볼 사람을 선출하는 자리입니다. 연말 결산 마을 회의인 셈입니다.

회의를 하는 자리라고 해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갈까 했더니, 결산 보고는 5분도 안 되어 끝이 나고 고기를 굽기 시작합니다. 고기가 구워지고 소주잔이 한 순배 돌아갈 때쯤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집니다. 마을 안에서 갈등 관계로 지내고 있는 두 분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분이 “그 사람 오면 난 나갈거야” 하십니다. 상대로 지목된 분은 아직 안 오셨구요. 마을 분들은 계속 “그 사람이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그냥 받아줘라”하고 설득하십니다.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몇 년간 두 분이 갈등 관계에 있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인사도 안 하고 지내신다네요. 두 분이 싸우는 바람에 좁은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도 불편했던 것이구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자리에 안 계시던 한 분이 갑자기 경로당에 나타났습니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고, 몇 년 만에 한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서 마을 사람들이 중재에 나섭니다. 나중에 오신 분도 먼저 와 계시던 분께 앙금이 많은지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그 때 조용히 앉아계시던 한 어르신께서 “불이 났을 때는 먼저 끄는 사람이 현명한 것이여”라고 한말씀 하십니다. 나중에 오신 분이 그 말에 조금 마음을 움직였고, 다른 마을 어르신들이 “그려, 자네가 나이도 아래이고 하니까 미안합니다, 사과 한 마디만 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도 좋을 것이네”하니, 끝까지 고집을 부릴 것 같던 분이 고개를 숙이며 깊은 사과를 하십니다. 사과를 안 받아줄 것 같던 분도 갑자기 아이처럼 웃으며 손을 잡고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오해가 있었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으니 사실 별 이야기 아니더군요. 몇 년간 있었던 마을의 갈등이 풀리는 현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 치고 기뻐서 또 소주 한잔 씩을 드십니다. 점심 먹고 바로 바둑 대회가 시작되었구요.

저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좋은 대동회 자리가 열려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분들이 화해를 하시고, 말 그대로 마을 사람들이 크게 하나되는 것을 보니 기뻤습니다. 우리가 참 좋은 분들 사시는 마을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불이 났을 땐 먼저 끄고 보자. 마을 어르신들의 소박하지만 지혜로운 가르침들, 앞으로 많이 배워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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