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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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눈오는날 하우스 세우기

백화골 2011. 12. 12. 23:04

여러 가지 자잘한 일거리들과 잦은 비 때문에 차일피일 계속 미루어 오던 큰 숙제 하나를 드디어 끝냈습니다. 바로 내년 농사를 위한 하우스 뼈대 세우기!

땅이 완전히 꽝꽝 얼어붙기 전 하우스 파이프를 구부려 박아놓는 것까지만이라도 얼른 끝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라, 땅이 질척거리든 말든, 준비가 다 되어있든 말든 무조건 날짜를 잡고 몇몇 계북 친구들에게 지원 요청도 해놓았습니다.

디데이 하루 전, 파이프 꽂아넣을 자리에 미리 쇠막대기를 대고 망치질을 해서 일정한 간격과 깊이로 구멍 뚫는 일을 했습니다. 이 작업을 다 마쳐 놓아야 다음날 여러 사람들과 같이 구부리고 꽂는 작업을 할 수가 있는데, 예상 밖의 암반 지역을 만나 작업이 더뎌진 데다, 오후에 갑자기 손님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미처 구멍 뚫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버렸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다음날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와중에 망치질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온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망치질을 해대니 동네 개들도 왈왈  따라 짖고... 

이런 와중에 한술 더 떠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합니다. 이걸 어쩌나... 우울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털모자를 뒤집어 쓴 사람이 터벅터벅 올라옵니다. 미안한 마음에 차마 와달라고 부탁하지 못했던 마을 이웃 성환이입니다.

“괜찮아요, 이거 지나가는 눈이에요. 금방 그칠 거예요.” 아무 근거도 없이 호언장담하는 성환이 말에 왠지 기분이 가벼워집니다. 여덟 시쯤 되자 계북면 농민회의 성민이형과 은진이도 올라왔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구멍도 다 못 뚫어놨어?” 타박하며 껄껄 웃는 웃음에 조금 전의 우울하던 마음은 어디론가 깨끗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눈발이 그친 틈을 타 구멍뚫기를 얼른 다 끝내고 파이프를 활대에 대고 구부려 꽂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지는 함박눈! 눈 내리는 밭에서 참으로 라면 한 그릇씩 끓여 먹고 다시 분발, 남자 넷이 붙어 실력 발휘를 하니, 열두시도 채 안 되어서 하우스 네 동의 뼈대 세우는 작업이 뚝딱 끝나버렸습니다.  

궂은 날 발이 푹푹 빠지는 힘든 상황에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준 친구와 이웃 덕분에 내년 농사의 기초가 무사히 잘 세워졌네요. 하우스 만드는 나머지 일들은 둘이서 겨우내 조금씩 해나가면 될 테고요. 그나저나 하루 아침에 뚝딱 집 네 채가 더 생겨버렸으니 이 정도면 집부자라 해도 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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