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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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마을 안으로

백화골 2011. 12. 3. 22:22

장수 내려와서 처음으로 12월을 맞았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난방비 절약을 핑계로 장수를 떠나 있었던 터라 12월 장수 풍경은 처음입니다. 예전에 살던 계남면 마을은 인위적으로 새로 조성된 마을인데다 귀농, 귀촌자들이 모여 살았던 터라 농촌 마을이라고 하기엔 좀 어정쩡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보통’ 시골 마을 안으로 들어와 살게 된 것 역시 처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른 모든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우리 매자마을의 중심도 당연히 이곳, 마을회관을 겸한 경로당입니다. 전에 살던 마을에는 노인이 없었기 때문에 경로당 역시 우리에겐 조금 생소합니다. 오래된 낡은 건물이지만 안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안합니다. 매자마을 주민은 대부분 노인분들인데, 겨울에는 경로당에 모여서 매일 함께 식사도 하시고 TV도 보면서 하루를 보내십니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시골은 집집마다 겨울 난방비가 걱정인데, 낮에는 경로당에서 공동생활을 하시고 집에선 잠만 주무시는 것이지요. 

엊그제는 저녁 무렵 무슨 일이 있어 경로당에 들렀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8시 드라마도 보고 9시 뉴스까지 보고서 돌아왔습니다. 강원도 폭설 뉴스를 보며 “에구, 저걸 어쩔까” 혀를 차다가 11월에 이렇게 눈이 안 오고 비만 오는 건 처음이라는 말씀도 하시고, FTA 관련 뉴스가 나오자 할아버지 한 분은 근엄한 목소리로 “저 에프에이티라는 게 요즘 아주 문제가 많은 모양이야.” 한말씀 하십니다. 물론 아무도 “에프에이티가 아니라...” 하며 정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칼바람 부는 겨울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할머니들과 담요 덮고 앉아서 9시 뉴스 보며 이런저런 얘기 하는 재미, 꽤 쏠쏠했답니다.  
     
손바닥만한 산골 마을에서 평생을 티격태격 함께 보낸 얼굴들일 텐데 다들 사이 좋게 지내십니다. 시골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 대해 감추는 게 별로 없습니다. 사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도 않고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드러내고 삽니다. 아직 이곳에 들어온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여러 사연들을 알게 됐습니다. 눈물 나는 사연도 많고 행복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연 속에 이제 우리 이야기도 조금씩 엮이어 들어가게 되겠지요. 우리가 매자마을의 선한 이웃들의 이야기와 씨실날실 잘 엮이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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