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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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잠못 이루는 가을밤

백화골 2011. 10. 19. 23:22

일요일. 가을 산행을 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고 사는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장수 팔공산(대구 팔공산과 이름이 같은 산이 장수에도 있답니다)에 올랐습니다. 사실 처음 시골에 내려올 때는 좀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었는데, 피땀흘리며 열심히 사는 농민들과 함께 살다보니 미안해서라도 더 부지런히 생활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 좀 심하게 일에만 빠져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 아닌 자책이 들어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다 함께 간다고 약속했었는데, 막상 등산 당일 아침이 되니 다들 일을 핑계로 빠져 버립니다. 결국 몇 사람만 함께 산에 올랐는데, 역시 가을산 참 좋더군요. 가벼운 등산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줍니다. 내려오는 길 막걸리 한 잔으로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시 월요일. 역시나 바쁩니다. 양상추, 브로콜리, 무, 쌈배추, 상추, 강낭콩 등 이번주 발송 농산물들이 생각보다 수확이 오래 걸리네요. 날씨가 추워져서 괜히 마음이 바빠진 것도 같습니다.

화요일 새벽에 영하 1도까지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영하 1도면 노지 작물이 피해를 입을 만한 온도입니다. 원래 10월 말에야 영하로 내려가는 게 평년 기온일텐데 이상기후로 10일 이상 빨라졌습니다. 아직 자라고 있는 무, 브로콜리, 양배추, 가지 등이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질 않습니다. 비닐로 덮어줄 수 있는 것은 월요일 저녁에 덮어주었는데도 밤새 이리뒤척 저리뒤척, 무가 서리를 맞아 다 죽어 있는 모습이 무서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새벽 4시에 깨서 바깥 온도를 보니 다행히 영상 2도입니다. 서리는 내리겠지만 잘하면 노지 작물이 죽진 않겠구나 안심이 됩니다.

날이 밝자마자 밭으로 나가보니 모두들 멀쩡합니다. 무청이 “우리 다 괜찮아요!”하고 새파랗고 싱싱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네요.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집에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무나 배추 등은 찬바람을 맞아야 달고 맛있어집니다. 물론 무는 영하로, 배추는 영하 6도 이하로 내려가면 죽어버리지만요. 

마지막 주 발송을 기다리는 비타민채, 샐러리, 시금치, 청경채, 가을 당근이 아슬아슬한 날씨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 발송 날짜에 맞춰서 심은 것들입니다. 샐러리는 아직 좀 작아 아쉽긴 하지만 그런대로 수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음주 수확할 날이 기다려집니다. 

지난번에 1차 수확을 마치고 난 배추밭입니다. 작년 이맘때는 배추값 급등으로 전국이 들썩들썩 했었지요. 그런데 올해는 정부에서 무관세 중국산 배추를 대량 수입한 데다가 작년 생각하고 배추 심은 농민들이 많아서 배추값이 폭락했습니다. 그냥 갈아 엎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방치하는 배추 밭도 많습니다. 해마다 널뛰기를 거듭하며 농민을 울리고 소비자를 울리는 배춧값은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그대로 비춰내는 거울인 것 같습니다. 

올해 가장 농사를 망친 양상추입니다. 노지에 심어 놓고 물관리를 잘 못해서 크질 못했습니다. 한때 주작목으로 생협 납품까지 했던 작물인데 방심했습니다. 내년엔 초심을 잃지 않고 잘 키워서 다시 크고 멋진 양상추를 키우렵니다.

집 짓기가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보일러를 놓았구요, 다음주에 도배 장판, 집 말리기, 준공 검사를 하고 이사를 할 예정입니다. 가족회원 농산물 마지막회 발송과 이사가 어쩌다보니 같은 주에 이뤄지게 되었네요. 다음주는 정말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10월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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