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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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겨울 휴가, 2011년 봄에 찾아뵙겠습니다

백화골 2010. 11. 4. 22:53

아욱은 지난 번 글 올리고 난 다음날 바로 전멸했습니다. 아침에 온도계를 보니 영하 6도더군요. 장수에서 산 몇 해 동안 가장 빨리 서리가 찾아온 해입니다. 아욱뿐 아니라 추위에 약한 다른 채소들도 하룻밤 새 다 시들어버렸습니다. 다행히 추위에 강한 채소들은 살아남아서 마지막 주 발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김장과 밭 정리도 거의 끝나가고 있고, 며칠 있으면 이제 긴긴 겨울 휴가가 시작됩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저희들은 또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밭정리지만 올해는 잘 안 된 농사가 많아 힘이 더 드네요. 더 날씨 추워지기 전에 열심히 밭정리를 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밭을 보니 시원섭섭합니다.

밭정리를 끝내고 난 뒤엔 귀농 6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김장을 해 드렸습니다. 해마다 올해는 꼭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그냥 배추만 갖다 드리곤 했었는데 올해는 어머님께서 손을 좀 다치셨다고 해서 마음 다잡아먹고 시도한 일입니다. 매년 우리 먹을 것만 조금씩 하다가, 처음으로 김장다운 김장을 하려고 보니 모든 게 난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김장김치 담그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지역별로 다르고, 집집마다도 다 다르고... 며칠 동안 치밀하게 정보 수집(?)을 한 뒤 날을 잡아 밭에 남겨 놓은 배추를 수확해 절이기 시작했습니다.

꼬박 2박 3일이 걸렸습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김장 담그기가 이 정도로 힘든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마늘 양파 까는 데 천만년은 걸리는 것 같고, 칼바람에 배추 다듬는 손은 날아갈 것만 같고, 나름 잘 절였다고 생각한 배추는 물기 빠지면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고, 버무리다 보니 속이 턱없이 모자라고, 버무려 김치통에 넣고 하룻밤 지났는데도 배춧잎은 여전히 파릇파릇 생생하기만 하고...

한국 어머니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며 살고 계신지 김장을 하면서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평생 해오신 어머님께 얼마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던지요. 저녁 7시부터 버무리기 시작해 새벽 5시에야 일이 끝났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내야 하는 일이라서 밤을 꼴딱 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성된 김장 김치를 부모님께 전해드리니 참 좋아하십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부모님 김장은 담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먹을 양은 조금 떼어서 땅 속 항아리에 묻었습니다. 내년 2월에 여행 마치고 돌아와서 이 김치를 꺼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하니 항아리 묻을 구덩이 파는 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마치고 평소 우리를 많이 도와주는 이웃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반찬은 저희 밭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한 싱싱한 채소들. 상에 하나하나 씻어 올려놓는데 너무 예뻐서 보기만 해도 뿌듯합니다. 이런 풍요로운 식탁을 겨울 동안 구경 못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 아쉽지만 기분 좋게 이웃과 저녁을 먹으며 올 한 해 농사지은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금방 깊어갑니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매해 그러했듯이 장수를 떠납니다. 올해는 문경에서 여행을 시작, 인천에서 배를 타고 맛있는 맥주로 유명한 중국 칭따오로 건너간 뒤 다양한 종족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여행자 천국 윈난성까지 내려갑니다. 육로로 베트남 하노이로 건너가 그리웠던 베트남 음식에 며칠 푹 빠져 지낸 뒤, 비행기(미리 예매만 잘 한다면 정말 파격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의 예쁜 빨간 비행기)로 스리랑카로 날아가 물방울 모양의 이 작은 섬나라를 구석구석 둘러볼 계획입니다. 그리곤 한국으로 돌아와 경주에서 여행을 마칠 예정입니다.

여행하는 순간 순간,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올해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한 겨울을 보내려고 합니다.

저희 블로그는 올해도 겨울 동안 개점 휴업합니다. 한 해 동안 찾아주신 가족회원분들과 블로그 방문자 분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내년 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