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0년

비닐하우스 먼지를 닦으며 10월을 시작하다

백화골 2010. 10. 1. 22:34

아름다운 10월의 첫날입니다. 이번 주로 가족회원들에게 20번째 농산물까지 보냈으니, 이제 앞으로 4번밖에 더 남지 않았습니다. 농사지을 수 있는 기간도 이제 딱 한 달 뿐입니다. 겨울에 하우스에 불 때가며 일하지 않는 이상,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이 주는 긴 겨울방학에 들어가야 합니다.

점점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사람 마음도 자꾸만 느슨해지려고 합니다. ‘이제 한 달 만 있으면 끝인데 대충 넘어가지, 뭐’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몇 년 겪어 보니 10월은 수확하고 이것저것 정리할 것 많아서 바쁘기는 하지만 하염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해 10월은 하우스 비닐 청소하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마대 걸레로 비닐을 일일이 닦았습니다.

저희 비닐하우스 위쪽에는 이웃들이 닭을 키우는 닭장이 세 동 있습니다. 친환경 닭장이긴 하지만 먼지가 많이 날아옵니다. 게다가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서 주위 나무들에서 꽃가루가 많이 날아오고요. 작년 가을 가뭄 때부터 조금씩 불순물이 쌓이더니 최근에는 하우스 비닐을 거의 뿌옇게 막아버릴 정도로 지저분해졌습니다. 며칠 동안 이어진 폭우에도 얼룩지며 쌓인 먼지는 씻어지지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가뜩이나 일조량이 떨어지는데 비닐까지 먼지로 덮여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올해 농사도 이제 거의 다 끝났는데 내년 봄에 닦지, 뭐...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다른 일 다 제쳐놓고선 아침 일찍 철물점에 갔습니다. 닦을 때 비닐이 손상되지 않을 만한 부드러운 재질로 된 긴 막대 걸레를 사온 뒤 작업 돌입!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은 사다리 타고 올라가고 한 사람은 밑에서 걸레를 받아 계속 빨아가면서 6시간 동안 하우스 비닐을 말끔히 닦아냈습니다.

왼쪽이 걸레로 닦은 곳이고 오른쪽이 아직 안 닦은 곳입니다. 먼지가 정말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이렇게 해서 애호박 한 개라도 더 열린다면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일마치고 해 쨍쨍 뜰 때 보니 햇볕이 하우스 안으로 훨씬 잘 들어오네요.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집니다. 이래서 농사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뭔가 노력하면 성과가 보이고 열심히 하면 어지간해선 결과가 좋습니다. 물론 날씨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때도 있지만요.

파란 가을 하늘과 어울려 반짝 반짝 깨끗하게 빛나는 하우스를 보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일하기 좋은 달 10월. 한 달 남은 올해 농사 끝까지 한 번 부지런 좀 떨어봐야겠습니다.   

덧붙임.

조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어떤 농부가 도시에선 1만5000원 하는 배추가 현지에선 1000원 한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가 떴네요. 1000원까지는 아니지만, 생산지에서 배추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아랫마을 이장님이 올해 운 좋게 배추를 많이 심었고 다 잘 되었는데, 도매상인이 와서 포기당 4000원에 사가겠다고 했다며 ‘자랑’을 하시더라고요. 이장님도 물론 서울에선 배추가 1만5000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아무리 농산물 값이 하늘 높이 뛰어도 그건 딴 세상 얘기라는 것 또한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도매상인에게 4000원에 넘기면서도 그 정도면 좋은 값이라 생각해 자랑을 하시는 것이지요. 
참 여러 가지 씁쓸한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배추 파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