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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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가을걷이

백화골 2010. 10. 7. 22:00

본격적인 수확철이 시작되어 백화골의 하루하루는 캐고, 따고, 정리하느라 바쁩니다. 지난 여름의 폭우, 폭염 피해가 농산물에 묻어나와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고, 고생한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농산물 수확하는 순간의 기쁨과 뿌듯함은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해줍니다. 

올해도 역시 땅콩 캐기로 수확철을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땅콩밭을 다 캐고 나면 왼쪽의 고구마 밭을 캘 예정입니다. 땅콩은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안 좋았는데도 그럭저럭 잘 들었습니다.

땅콩 캐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지루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밭 가운데까지 들어와서 한동안 구경하시다가 “품삯도 안 나오겠구먼” 하며 한숨을 쉬고 갑니다. 농사일이 대부분 품삯도 안 나오는 일이긴 하지만 콩 종류 농사는 특히 심한 것 같습니다.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요. 요즘 국산 땅콩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땅콩 캐는데 귀여운 도마뱀이 지나갑니다. 손으로 톡톡 건드리니 정든 땅콩밭을 떠나기가 아쉽다는 듯이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수풀 너머로 사라져버립니다.

캐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말려야 합니다. 비온 뒤라 진흙이 땅콩에 많이 붙어 있어서 다 씻어내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채반에 널어 1차로 물기를 빼낸 땅콩을 볕이 잘 드는 마당 한가운데 골고루 펴놓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쨍쨍 내리쬐는 가을볕이라도 최소한 3일 이상 널고 걷고를 반복하며 말려주어야 합니다.

폭염이 계속되어 뿌리를 잘 못 내리던 양배추가 드디어 속이 찼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좀 작지만 올해 날씨가 안 좋았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 자라준 것만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배추입니다. 다행히 올해 가을 배추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이상기후 탓에 무름병으로 죽은 놈들도 많아서 별도 판매하거나 넉넉하게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진 못하지만 평소처럼 푸른밥상 회원 두 포기, 작은 회원 한 포기씩은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 차는 거 봐서 다음주나 다다음주 쯤에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브로콜리, 컬리플라워가 속을 끓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여름에 대실패를 한 작물들이라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크기만 크고 꽃이 피질 않네요. 꽃을 먹는 작물인데 꽃이 안 피니 피가 마릅니다. “이러다 올해 안에 못 보내는 거 아냐?” “얘들아 왜 꽃이 안 피니 이제 좀 필 때도 되지 않았니?” 하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합니다. 아직 3주가 남았으니 그 안에는 꽃이 피겠지요.

원래 45일 정도 수확하는 작물인데 마지막 2주 간의 발송을 위해 새 상추를 심었습니다. 가을 상추도 봄 상추 못지않게 맛있거든요. 지금 잘 자라서 다음 주부터 쌈배추와 같이 수확할 예정입니다. 오른쪽에 녹색 기운이 넘치는 놈은 열무입니다. 여름엔 열무를 보내면 상하는 일이 많아서 시기를 조정해서 늦게 심었습니다.

아욱은 1년 중 가을 것이 제일 맛있습니다. 그런데 아욱 씨를 넣어야 되는 시기에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밭을 만들지 못해 조금 늦게 심었더니 아직 이렇게 손톱 만합니다. 아욱 역시 올해 안에 보내드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놈들 중 하나입니다.

가족회원분이 찾으셔서 심게 된 비타민채가 찬 바람을 맞더니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올해 대파 농사가 망했습니다. 너무 만만하게 본 잘못도 있고, 폭우에 심어놓은 대파 절반이 쓸려 내려가서 피해가 있었습니다. 끝까지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부랴부랴 다시 심은 대파가 빨리 자라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화산도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집 주변 나무며 꽃들이 가을 분위기로 바뀌어 갑니다. 해가 짧아져서 6시도 채 안 돼서 일을 마쳐야 하구요.

갓 수확한 땅콩을 몇 개 까서 밥에 넣어 보았습니다. 달고 맛있습니다. 바로 캐서 바로 맛보는 기쁨은 농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