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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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태풍 무사히 지나갔어요

백화골 2010. 9. 3. 23:00

아, 정말 무서운 태풍이었어요. 전국 곳곳이 난리가 났다지요. 어제 그제 백화골의 안부를 걱정하는 고마운 이들의 연락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장수는 태풍이 지나가는 경계 범위의 끝자락에 걸쳐져 있었나 봐요. 밤새 강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긴 했지만, 무사히 태풍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은 다른 지역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걱정해주시고 마음 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부터 드립니다. 

읍내 나가는 길에 있는 장계 천변의 물이 무섭게 불어나 있네요. 평소 졸졸 흐르던 물이 이렇게 콸콸 넘쳐흐르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백화산에 올라가보니 곳곳이 산사태의 흔적입니다. 모두 상판한 곳입니다. 기존에 자라던 나무를 베어버리고 새로 나무를 심은 것인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이윤 추구를 위해 마구잡이 식으로 벌목을 해놓으니 이런 산사태가 일어납니다. 집이나 밭 주변에서 일어났다면 끔찍한 결과가 생겼을 테지요.

태풍 소식에 가장 긴장한 건 과수 농가들일 거예요. 요즘 배 값 대신 일 도와주러 나가고 있는 사과밭 주인 부부는 너무 걱정이 되니까 아예 ‘될 대로 되라’ 하고 뉴스도 안 보고 창문 꼭꼭 닫고서 일찌감치 불 끄고 잤답니다. 다행이 장수는 태풍이 살짝 맛보기만 보여주고 간 덕에, 수확을 코앞에 둔 예쁜 사과들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우리도 바쁘지만 주변 사과 농가들이 워낙 바쁜데다가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추석 전 며칠 동안은 틈나는 대로 몇몇 사과밭에 나가 일을 돕습니다. 사과가 골고루 빨리 익으라고 열매 주변을 가리는 잎들을 따주는 일을 하는데, 사다리 타고 높은 데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리긴 하지만, 향긋한 사과향이 코 끝을 스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언제 태풍이 지나갔나 싶게 오늘 아침엔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이 펼쳐집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오랜만에 비 안 맞으며 일하니 참 좋습니다. 

밭에 나가보니 무서운 비바람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메뚜기 한 쌍이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늦더위가 한창인데 메뚜기들이 늘어나는 걸 보니 가을이 오긴 오려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