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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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낙엽 비 날리는 날, 제철 농산물 가족회원 마지막 발송

백화골 2009. 10. 30. 22:10

올해 제철농산물가족회원들에게 마지막 발송을 했다. 2월에 땅 만들기를 시작해서 3월에 씨 넣고 가꿔 봄, 여름, 가을을 지나왔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작물이 기력이 쇠해지듯 농부의 몸도 힘이 달린다. 올해는 마지막 주까지 기력을 잃지 않으려고 운동선수들처럼 체력안배(?)에 신경을 좀 썼다. 오늘 드디어 마지막 발송 농산물들이 택배차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니 홀가분하면서도 또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마지막 주 발송하는 날 아침 밭으로 나가는 길, 언제나 파란 하늘과 맑은 백화산이 우리를 맞아준다. 약간 쌀쌀하기는 하지만 일하기 좋은 한 주였다.

쌈배추가 마지막 주까지 잘 살아남았다. 배추 속잎을 계속 따주는 쌈배추는 맛있는 야채이기는 하지만 사실 배추에게는 좀 미안한 일을 하는 셈이다. 끝없이 새로운 속잎이 솟아 올라오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데 그걸 우리는 매일 매일 따내니 말이다.

마지막 주에 첫 잎을 따기 위해 남겨둔 적치커리다. 어떤 쌈채소든 첫 잎이 제일 맛있다. 그래서 마지막 주에 다른 쌈채소가 잘 자라지 않을 것을 생각해 남겨뒀다. 잎 따는 내내 주위에 퍼지는 향기가 좋다.

가을 내내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이 배추벌레를 잡는 일이었다. 청벌레와 메뚜기를 하루 평균 200마리 정도씩은 죽인 것 같다. 매일 잡아 죽이는데도 매일 또 어디선가 나타나 배추에 구멍을 뚫는다. 얼추 계산을 해보니 총 1만 마리 정도의 메뚜기를 죽인 듯한데, 이 질기고 질긴 놈들이 수확하는 날까지 배추에 붙어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가을배추가 잘 됐다. 우리가 지은 역대 배추농사 중에서 이번 것이 가장 포실하게 잘 자란 것 같다. 사실 유기농으로 배추를 잘 키우는 건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다. 우리도 그동안 수차례의 실패를 반복하다가 이런저런 노하우가 쌓이면서 이렇게 알찬 배추를 키우게 되었다. 배추를 수확하는데 새삼스레 감개무량하여 만담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으윽, 이 배추 좀 빨리 받아줘, 허리에 담 걸릴 것 같아~~”  “배추를 이렇게 크게 키우면 어떡해, 들 수가 없잖아!”

귀농 첫해와 둘째 해에 많이 심어서 생협에도 내고 직거래도 했던 양상추. 올해는 배추만 너무 편애한 탓인지 양상추가 예년만큼 그렇게 크게 자라지 못했다. 어떤 작물이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스런 손길이 중요하다.

애호박에 애벌레가 들어간 건 처음 봤다. 애호박은 병도 별로 없고 벌레도 많이 달려들지 않는데, 작물이 힘이 없어져서 그런지 벌레가 애호박을 파먹고 있다.

팝콘용 옥수수밭을 정리했다. 예초기로 베어버리니 가볍게 끝났다. 옥수수 수확할 때가 되니 가축 키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옥수숫대 좀 달라고 한다. 옥수숫대는 소먹이로 아주 좋다고 한다. 하지만 소뿐만이 아니라 땅도 옥수숫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하고 싹 거두어다가 하우스 옆에다 쌓아놓았다. 작두로 일일이 잘라서 밭에 넣고 쟁기질할 계획이다. 유기농으로 제대로 농사지으려면 땅이 좋아하는 유기물들을 끊임없이 넣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옥수수를 수확해 실으니 트럭 뒷칸이 다 찬다. 껍질을 까는 데만 하루 종일 걸렸다. 야채 장사처럼 트럭 뒤에 앉아서 아침, 점심, 저녁을 보냈다.

팝콘용 옥수수는 한참을 말려 수분을 빼야 팝콘이 된다. 수확시기가 맞지 않아서 내년에 발송하려 했으나 몇몇 회원들에게 물어보니 집에서 말리기도 쉽고, 또 집안에 걸어두면 보기에도 좋다며 보내달라고 한다. 그래서 안내장에 한 달 이상 말려서 드시라고 적어서 마지막 발송품목에 넣어 보냈다. 정말 까놓고 보니 윤기 도는 노란색 옥수수알이 너무 예쁘다.

드디어 4년 만에 모든 회원에게 보낼 만큼 들기름이 나왔다. 비록 작은 박카스 병에 담아 보낸 것이지만 그래도 모든 회원들에게 들기름을 보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뤘다. 들기름은 들깨 수확부터 말리기, 털기, 키질하기, 씻어서 말리기, 기름 짜기 등의 모든 과정이 짧게 끝나는 대신 고되고 성가시다. 올해도 “우리 내년엔 들깨 심지 말자!”를 연발하며 어렵게 어렵게 그 과정을 거쳤는데, 짜 놓은 들기름을 보니 그 모든 노력이 참 보람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년에 또 들깨를 심게 될 것 같다.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이번 주에는 배추가 커서 일반회원은 박스 두 개를 묶어서 보냈다.

모든 발송 작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그리 세지도 않은 저녁바람에 낙엽이 비처럼 떨어진다. 우리 카메라가 요런 세세한 모습까지 담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지는 해를 배경으로 낙엽이 휘날리는 모습은 정말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풍경 위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야 할 것만 같다. 출연-백화골의 각종 야채들, 스탭-배추밭에서 만담하며 노는 백화골 부부 농부, 총감독-백화골의 자연, 스페셜 땡스  - 6개월 동안 백화골 푸른밥상을 받아준 고마운 가족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