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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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수세미로 수세미 만들기

백화골 2009. 10. 17. 21:41

어젯밤 강풍과 함께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날씨 뉴스를 보니 전국적으로 내린 비였다고 하네요. 해가 뜨면서 비는 그쳤지만 흐린 날씨에 간간이 찬 보슬비도 흩뿌립니다. 아직 캐야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땅이 젖어있어 밭에 들어가 일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런 날엔 이런 날에 맞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 며칠 맘속으로 벼르기만 하던 일을 아침부터 벌여놓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수세미로 수세미 만들기!

수세미는 처음 심을 때 거름을 넉넉히 넣어주고, 타고 올라갈 만한 지주대만 튼튼히 세워주고 나면, 수확할 때까지 별로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쑥쑥 잘 크는 식물입니다. 뭔가 잡고 올라갈 만한 것만 있으면 높이 높이 덩굴이 뻗어 올라가 금세 아기 수세미들을 조롱조롱 선보이지요.

처음에 고추만 한 크기였던 수세미는 금방 오이만큼 자라고, 주키니 호박만큼 커지다가 마지막엔 야구방망이만큼 커진답니다. 저렇게 거대한 열매를 잔뜩 달고 어떻게 가느다란 줄기가 버텨낼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인데, 열매를 따서 손에 들어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다른 야채들에 비하면 수분 함량이 적어 이렇게 컨테이너 박스 한가득 싣고 들어도 그렇게 무겁지가 않답니다.

단단하게 잘 여문 놈으로 골라 수확해온 수세미를 이제 솥에 넣어 삶아야 합니다. 야구방망이만 한 수세미가 통째로 솥에 들어갈 리가 없지요. 적당한 크기로 쓱쓱 잘라줍니다. 이때 내년에 심을 씨앗도 미리 받아놓습니다.

팔팔 끓는 물에 잘라놓은 수세미를 넣고 푹 삶아서 꺼낸 뒤 찬물에 헹구면 단단하게 붙어있던 겉껍질과 속 알맹이가 떨어져나가고 억센 섬유질 덩어리만 남습니다. 얼기설기 뽀얗게 드러난 수세미 속의 수세미, 바로 요놈들입니다.

하루 종일 썰고, 삶고, 씻고를 반복하니 커다란 바구니로 하나 가득 수세미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며칠 그늘에서 잘 말리기만 하면 천연 수세미 완성입니다. 다 만들어진 수세미는 백화골 유기농 농산물 꾸러미 회원분들 집으로 고이 배달될 예정이랍니다^^

요즘엔 거의 화학 제품 수세미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 번 천연 수세미를 사용해본 사람은 대부분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세제를 많이 묻히지 않아도 뽀득뽀득 기름기까지 야무지게 잘 닦이는 데다, 닳도록 써도 미세한 화학물질 찌꺼기가 묻어 나오진 않을까 찜찜해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천연 수세미를 목욕용 스펀지로 써도 참 좋습니다. 적당히 거칠면서도 적당히 부드러워 피부에 아주 딱 감기는 느낌입니다. 자연에서 나온 것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들지요.

열매를 삶기 전에 받아 놓은 수세미 씨앗을 말려서 저장합니다. 씨앗을 받을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듭니다. 아직 올해 농사도 채 끝나기 전인데, 벌써부터 내년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돌고 돌고 도는 것이 농사일인 것 같습니다. 작은 씨앗들 속에서 또 튼튼하게 자라줄 내년의 수세미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