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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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서리가 내리기 전에…

백화골 2009. 10. 12. 22:30

밭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10월! 예년과 다른 점이라면 조금씩 노하우가 생겨서 힘들지만 하나둘씩 일이 정리되는 게 보인다는 것이다. 땅콩, 고구마 캐고, 들깨 베고, 양배추, 브로콜리, 시금치 등 가을 제철농산물 수확하며 지낸다. 바쁘지만 나름대로 멋진 가을날들!

고라니가 들깨 냄새를 싫어한다고 해서 옥수수 옆에 조금 들깨를 심었는데 잘 됐다. 물론 고라니는 들깨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수수를 먹으러 들어왔지만, 들깨 농사가 잘 되어 위로가 된다. 들깨는 이슬이 맺혀 있을 때 베어야 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들깨를 베어 뉘어놓았다.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들깨를 다 베고 나니 해가 벌써 정오 가까이 와 있다. 1주일쯤 지난 뒤 털면 된다. 들기름이 많이 나와서 모든 회원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주에는 농산물 가족회원들에게 쌈채소를 많이 보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한 이후로 쌈채소들이 무척 맛있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서면서 벌써 양이 확 줄어버렸다. 아침저녁 온도가 너무 떨어지면 잘 자라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는 우리가 자원활동 나가는 아동센터 아이들이 땅콩 캐는 일을 도와주러 왔다. 우리가 바쁜 것을 알고 센터장님이 생각해서 아이들과 온 것이었지만, 그냥 그 마음만 도움이 됐다. 땅이 너무 딱딱해서 애들이 캐기도 힘들었고, 아이들이 뒤죽박죽 만들어놓은 밭을 뒷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도 우리 밭에 애들이 잔뜩 몰려서 땅콩을 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일요일 저녁, 하루종일 캔 땅콩을 작업장 마루에 앉아 정리하고 있는데 해가 진다. 라디오에선 해질녘 정취에 맞는 멋진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우리 집에선 거의 유일하게 맞춰지는 채널이 EBS인데, 평소 매일 영어 강좌만 나오다가 이날 따라 분위기가 좋다. 월요병을 걱정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의 우울한 청취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걸까. 그러고 보니 도시 살 때 가장 끔찍했던 때가 일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다. 월요병 없이 살게된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깜깜해지도록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기분 좋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낮에 일하는 데도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한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아침저녁으로는 추워서 어지간하면 일을 못할 정도다. 조금만 있으면 겨울이 올 듯 하다.

알타리무가 잘 자랐다. 초기에 많이 가물어서 걱정을 했는데, 몇 번 물을 주고 중반 이후에 비가 적당히 내려준 덕에 예쁘게 컸다.  

벌레 잡느라고 힘들었던 양배추도 포기가 잘 찼다. 큼지막한 양배추를 자르는 데 수확하는 즐거움도 컸다.

요즘 먹기 딱 좋은 시금치, 캐는 데 벌써부터 향이 좋다. 보통 시금치는 요리해서 먹지만, 우리는 주로 캐자마자 바로 생으로 먹는다. 밥과 된장과 시금치를 함께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 것 같다.

모레 정도면 땅콩, 고구마 캐기가 끝날 듯 하다. 이제 선별해서 회원들에게 보내면 되고, 남은 큰일은 야콘 캐기. 잘 자란 야콘이 서리 내리기 전에 어서어서 캐달라고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