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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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단비를 맞으며…

백화골 2009. 4. 15. 21:31

고마운 단비가 내렸다.
4월 들어 첫 번째 내린 비다. 5mm도 안 되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비 예보가 있긴 했지만 요새 오보가 많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오후 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마을 사람들 표정이 다 환해졌다.

비 온다는 예보에 5시30쯤 일어나 관리기를 끌고 바로 밭으로 나갔다. 골을 만들어놓고 비를 맞힌 후 비닐 멀칭을 하면, 습도가 적절히 유지돼 좋다. 아침에 기계를 쓸 때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이리저리 몸을 풀고 관리기를 트럭에 싣고 나섰다. 새벽 바람 쐬며 일하는 기분, 일하다가 동쪽 하늘에서 환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는 기분은 농부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야콘과 옥수수, 단호박 심을 밭을 만들고 토마토와 참외 심을 하우스도 골을 탔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장수읍에 나가 몇 가지 볼일을 보고 오려는데 계북에서 사과 농사짓는 친구에게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전화가 왔다. 이상 고온으로 사과 꽃이 2주나 일찍 펴버리는 바람에, 일손을 구하러 남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사과는 꽃이 만개해버리기 전에 열매 맺을 자리만 남기고 꽃 따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일단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모두들 없는 일손을 짜내서라도 제 시간 안에 꽃 따는 작업을 끝내기에 여념이 없다. 계북 친구도 주위에 일손이 없어 남원까지 가 베트남 일꾼들을 소개받아 왔다고 한다. 열심히 이것저것 농사 준비하고 공부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자극이 된다.

점심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 차에 타려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두둑 쏟아진다. 사람들 표정이 밝아졌다. 비가 오는데도 창문을 닫고 싶지가 않다. 마을에 돌아와 보니 사람들도 다들 비를 맞으며 신나게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 우리도 하우스 안에서 풀을 뽑고, 피망을 심고, 작물 줄 매주는 일을 했다.

하우스 안에서 풀를 뽑는데 반가운 친구가 보인다. 지렁이다. 지렁이가 꿈틀댄다는 것은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땅심이 살면 제일 먼저 지렁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귀한 친구라 소중히 다루며 감자 뿌리 부분에 조심스럽게 넣어주었다. 하우스 안에서 우두두 요란하게 울리는 빗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본다.

갑자기 4년 전 여름이 생각난다. 상추를 공판장에 출하하느라 새벽 4시부터 일을 하던 때였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무슨 총소리처럼 비가 쏟아지는데도 우리는 공판장 차 시간에 맞춘다며 정신 없이 상추를 땄다. 상추를 내고 돌아오는 데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여기저기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 때 무분별하게 나무를 베어낸 곳에서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고, 많은 피해가 났었다.

이런 비 피해 못지 않게 가뭄도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비가 안 온다간 결국 먹을 물도 없어질 것이고, 기본적인 삶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비 때문에 정신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저녁 무렵 배추와 감자, 양배추, 브로콜리에 깻묵액비와 미생물을 섞어서 스프링클러로 800리터를 뿌려줬다. 요즘 막 벌레들이 붙기 시작할 때라 빨리빨리 키워야 한다. 내일 아침이면 조금씩 더 자라있을 터이다.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작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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