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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꽃샘추위, 강풍 속에 비닐하우스 완성, 노지 감자 정식

백화골 2009. 3. 26. 15:23

중고 파이프로 세우기 시작한 비닐하우스 만들기 작업이 끝났다. 2월 말 한겨울에 시작한지 한 달 여 만이다. 그동안 변덕스러운 3월의 날씨 탓에 작업이 자꾸 늦춰졌다. 끝날 듯 끝날 듯 일이 계속돼서 우리도 많이 지쳤다.

지난주의 초여름 날씨는 사라지고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 낮에도 영상 5도 밖에 안 올라간다. 밖을 돌아다니는데 꼭 냉장고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영하의 새벽 기온 때문인지 배추 잎을 갉아먹던 벼룩 벌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일해야 하는 3월이 참 밉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와 체감 온도는 완전히 한겨울이다.

어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비닐하우스 작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비닐 씌우기 작업을 준비했다. 보통 새벽에 바람이 안 불기 때문에 비닐 씌우기는 새벽 일찍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마을 이웃들이 영하 5도의 추위 속에서도 한 두 사람씩 모여들었다.

하지만 여느 날 새벽과 달리 바람이 꽤 불어댄다. 작업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사람 모으기도 힘든 데 일단 해보자 하고 비닐을 쫙 펴서 파이프에 걸치게 시작했는데, 강풍이 크게 불어와서 30미터가 넘는 비닐이 확 날아가 버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실제로 재작년 즈음 주변 어느 집에서 바람 부는 날 무리하게 비닐 씌우기를 강행하다 비닐이 날아가 찢어버리는 바람에 새로 사다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다행히 한쪽 면 비닐을 잘 붙잡아놓아 비닐이 완전히 날아가는 것은 막았다. 너무 욕심을 냈나 보다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곡예사처럼 하우스 파이프 위를 민첩하게 잡고 올라가 날아간 비닐을 다시 씌운다.

다행히 잠시 바람이 멈춘 틈을 타서 일단 바람에 비닐이 날아가지 않게 클립으로 곳곳을 고정시켜 놓고 집에 들어와 몸을 녹이며 차를 마셨다. 다시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참 운이 좋았다. 이날 하루 종일 강풍이 불었다. 아차하면 30여 만원이나 되는 비닐이 다 날아가 찢어질 뻔한 날이었다. 주변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비닐 씌우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 짓는 일 때문에 미뤄뒀던 일들이 산더미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을 주루룩 정리해놓고, 일단 노지 감자를 심기 위해 마을밖에 빌린 땅으로 나섰다. 날씨가 무척 춥다. 바람도 계속 분다. 점심 먹고 저녁 해질 무렵까지 비닐 멀칭해서 감자를 파종기로 심고, 흙을 덮어주는 일을 했다. 허리도 어깨도 목도 뻐근하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서일까? 한참 일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연락 없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잘 살지? 날씨도 안 좋고 하도 일도 안 돼서 니 목소리나 들어보려고 전화했다. 너 X박이 안 찍었지? 요즘 그 놈 때문에 완전히 망하게 생겼다. 주변에 그놈 찍은 사람 있으면 상종을 말아라. 그래 농사 일은 할 만하냐? 감자 심는다고? 감자 다 크면 한 상자 보내줘라. 서울 오면 내 한 턱 쏘마. 니 목소리 들으니 잘 사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 감자 열심히 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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