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처럼 따뜻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온도계를 보니 영상 14도다. 며칠 전만 해도 영하로 내려가던 기온이 오랜만에 확 풀렸다. 물론 이러다 또 영하로 내려가는 게 산골 날씨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 참 따뜻하고 평화로운 하루였다. 연일 계속되던 황사와 미칠 듯이 불어대던 바람도 멈춰서 그야말로 천국 같은 날씨 속에 행복하게 일했다.
올해 농사 계획에 맞춰 인터넷으로 주문한 씨앗을 분류하고 파종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씨앗을 보니 마음이 설렌다.
씨앗을 키우는 포트에 좋은 흙은 넣고 씨앗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심었다.
씨앗을 넣고 난 뒤, 오랜만에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농사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햇볕이 더 잘 들어오라고 겨우내 묵은 때 묻은 모종 하우스 비닐을 물로 씻어주었다.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며 한바탕 물청소를 하는데도 춥지 않고 시원하다. 낮이 되자 정말 초여름처럼 기온이 더 올라간다.
배추밭에 가 보니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활착을 잘 하여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벌써부터 톡톡이 벌레(벼룩잎벌레)가 습격을 하고 있었다. 이 벌레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린 배추의 잎에 구멍을 숭숭 뚫고 다니며 심한 경우 완전히 전멸시키는 무시무시한 해충이다. 관행농의 경우 배추를 심기 전에 토양살충제 처리를 해 땅 속의 유충을 싹 죽이고 혹 나중에 벌레가 생겨도 농약을 쳐 한방으로 해결하지만, 친환경으로는 방제하기가 아주 어려운 놈이다. 지난 몇 년간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빨리 키워서 이 벌레들이 뚫기에 큰 잎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해질 무렵에 액비를 주면 가장 효과가 좋다.
작년 가을에 구입한 충전용 분무기로 깻묵액비(쌀겨와 깻묵을 1년 이상 물에 녹여 발효시킨 아주 좋은 식물 영양제다)와 목초액(벌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겨 기피제이기도 하고, 또 식물에 좋은 액비이기도 하다. 벌레 쫒는 효과는 아주 미미한 편이다), 청초액비(마늘과 청량고추, 자리공 뿌리 등을 현미식초와 함께 섞은 것, 벌레들이 냄새 때문에 도망간다. 잠시 동안만 ^^), 식용유(코팅 효과가 있다)를 함께 희석해서 배추에 뿌려 주었다.
어차피 친환경 방제로는 벌레를 완벽하게 죽이지 못한다. 잠시 기절해 있는 톡톡히 벌레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죽였다. 번식률이 엄청난 놈들이기 때문에 사실 손으로 죽이는 것으로는 별 효과를 볼 수 없다.
저녁 식탁에 냉이와 쑥이 올라왔다. 날씨가 더 따뜻해져서인지 이제 쑥도 제법 올라온다. 봄나물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