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1년 56

빗속 꽃잔치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며칠째 주룩주룩 비만 쏟아지고 있는 날들입니다.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들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장마가 길고 길어지면서 평안했던 마음도 척척하게 가라앉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우스 안에서 풀을 매다가 ‘왜 하필이면 농사꾼이 돼가지고 날씨 따라 안달복달, 전전긍긍... 어휴...’ 이런 생각까지 스쳐지나갑니다. 물론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지요. 남들이라고 다 비 오는 날 우아하게 음악 들으면서 차나 마시며 사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예보 확인해가며 하우스 문 올렸다 내렸다 하고, 아직 캐지 못한 감자가 빗속에 다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막 여물어가는 단호박이랑 참외도 걱정되고, 비실비실한 오이며 상추는 한심스럽고, 폭..

장마 속 여름 작물들

어느새 달력이 7월로 넘어갔네요. 장마가 이어집니다. 비가 내리다 해가 뜨고, 또 비가 오고를 반복합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겪는 일이라 그냥 마음 편하게 농사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해가 나면 밝아서 좋고 비가 오면 시원해서 좋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 않아서 일하기 좋은 나날들입니다. 오이가 결국 진딧물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오이에 진딧물이 많이 끓긴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전멸 당한 적은 없었는데, 올해는 유독 진딧물이 손 쓸 틈도 없이 오이밭 전체로 순식간에 번져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오이 넝쿨을 다 걷어 정리했습니다. 오이가 한창 쏟아져 나와야 할 때인데, 회원분들에게 충분히 보내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네요. 오이 뽑아낸 자리에는 유박 퇴비 넣고 밭을 새로 만..

포이동에 다녀왔습니다

10여 년 전 쯤 되었을까요. 아직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무렵이었는데, 사무실이 양재동에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는 저녁 먹고 야근하기 전 동료들과 사무실 주변을 한 바퀴씩 돌며 산책하곤 했습니다. 양재천 주변 산책로를 걷다가 사무실 뒷길 쪽으로 좀 멀리 걸어가다 보면 의외의 풍경과 만나곤 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고물들과 리어카를 끌고다니는 할머니들. 높다랗게 철판으로 가림막이 되어 있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코앞에 타워팰리스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강남 한복판에 고물상이라니, 뜻밖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나서 10여 년이 흐른 며칠 전, 뉴스에서 바로 그 ‘뜻밖의 동네’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포이동 266번지. 96가구 주민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

긴 가뭄 끝 장마와 태풍

한 달 넘게 계속되던 가뭄. 밭작물들이 비쩍 마른 채 근근히 목숨만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어서 비가 좀 왔으면 했는데, 이를 어쩌나, 좀 지나치게 많이 내렸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장마에 겹쳐 태풍까지 함께 찾아왔네요. 어제 그제, 태풍이 온다고 해서 잔뜩 긴장했습니다. 바람 소리에 잠을 설치고, 새벽에 나가서 하우스 안 날아갔나 확인해보고, 배수로 정비하고... 오늘 새벽에 집중적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아침부터는 날씨도 제법 맑아지고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점심 나절쯤 되니 갑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합니다. 기상 특보 뉴스에 장수군 계남면 호덕리 산간 마을에 위치한 주민들 대피 요망이라는 자막이 떴다는 겁니다. 주소까지 정확하게 우리 동네를 콕 집어서 보도된 뉴스 ..

반가운 손님

참 바쁜 나날들입니다. 하루도 빼지않고 12시간 이상씩 일하는 하루 하루가 이어집니다. 몸에 피로는 쌓여가지만, 올해 농사가 비교적 잘 되어서 힘이 납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기다리던 친구들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아주 반가운 손님들입니다. 첫 손님은 바로 벌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벌은 아주 흔했습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는 주변에 농약 치는 밭이 없고 산 바로 밑이라 벌이 아주 많았죠. 그런데 작년 가을부턴가 이상 기후로 저희 마을까지 벌이 귀한 손님이 되어버렸습니다. 벌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던 터라 좀 불안한 맘이 들긴 했지만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공기 좋은 산 밑에 설마 벌이 안 나타날까. 지난주까지도 진짜 벌이 안 왔습니다. 애호박이 아주 잘 자랐는데..

풍요로운 여름

며칠째 쨍쨍하고 화창한 날들입니다. 1년 내내 5~6월 날씨만 같다면 아마 농사꾼들 훨훨 날아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파나 폭염도 없고, 장마도 폭우도 없는 세상.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는 발송 품목에서 이제 산나물 들나물은 완전히 빠지고 풍요로운 밭 작물들이 슬슬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봄 브로콜리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은 넉넉하게 브로콜리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되어 신이 납니다. 브로콜리는 한 포기에 하나씩밖에 수확을 하지 못합니다. 곁순을 키워서 2~3개씩 수확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처음에 수확하는 것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상품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희는 한 개를 수확하고 나면 미련없이 다 뿌리채 뽑아내 버린답니다. 이렇게 브로콜리를 수확하고 난 뒤에 나오는 ..

아기 열매들

6월이 가까워지면서 아까시꽃 향기가 숨막힐 듯 짙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꽃소식이 한 발 느리게 날아오는 장수에선, 아까시꽃 역시 다른 지역보다 한참 뒤늦게 봉오리를 터뜨렸습니다. 일하다보면 코에 맡아지는 건 온통 아까시꽃 향기밖엔 없을 정도지만, 벌이나 나비들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아까시꽃, 토끼풀꽃, 고추꽃, 오이꽃...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별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꽃들도 빼놓지 않고 공평하게 고루고루 날아다니는 걸 보면 말이지요. 부지런한 곤충들의 도움도 받았겠다, 여러 가지 식물들이 슬슬 귀여운 아기 열매들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고추꽃이 지고 난 자리에 매달린 첫 열매입니다. 아직도 열매 끝에는 꽃송이의 흔적을 매달고 있네요. 개미 한 마리 바쁘게 지나가는 걸로 봐서, 이놈이 ..

산속에서 보낸 일주일

지난 한 주는 발송 품목 중 산나물들이 많아 산 속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예쁘게 물이 오른 새 잎사귀들로 뒤덮인 5월의 산 속은 참 아름답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다 보면 온갖 시름이 사라지고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고요하게 명상하는 느낌입니다. 이번에 보내드린 산취 향 어떠셨나요? 별 개성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양의 잎에서, 어떻게 이런 강한 향기를 내뿜게 되었을까 신기하게 생각될 만큼 취의 향기는 진하고 깊습니다. 어떤 분은 향이 너무 강해서 싫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취나물 한 번 안 먹고 그냥 봄을 보내기는 아쉬운 일이지요. 사진 속에서처럼 취나물은 약간 그늘진 곳에 많이 퍼져 있답니다. 여기는 신비로운 느낌의 미나리 밭이에요. 돌나물 군락지와 함께 산 속 깊은..

열무와 근대

장수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이번에 전국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렸다고요. 특별히 좋은 일로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수 운운하는 뉴스를 들으니 공연히 반갑네요. 장수 사람 맞나봅니다. 사실 장수가 가끔씩 TV 뉴스를 탑니다. 주로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는 기상 뉴스를 통해서였는데, 비 때문에 뉴스 나오는 건 처음 봤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이렇게 3일 내내 한여름 장맛비 같은 폭우가 쏟아지다니, 이것도 이상 기후의 징조일까요. 다행히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물 폭탄’식으로 온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 내리는 식으로 와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농산물 발송하는 날. 그런데 아침부터 쏟아지는 장대비가 멈출 줄을 모릅니다. 고생 좀 하게 생겼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빗속을 뚫고 다니며..

비 오는 황금 연휴의 벌레 잡기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쭉 이어지는 황금 연휴입니다.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휴가를 잘 사용하면 무려 6일이나 쉴 수 있는 좋은 날들입니다. 저희는 금요일에 농산물 발송 끝내고 주말에 비 온다는 소식에 이것저것 5월 작물을 심었습니다. 단호박, 참외, 가지, 고추 등을 노지 밭에 심었습니다. 비 오기 하루 전에 심느라 서둘렀는데 비가 적당히 내려줘서 뿌리를 잘 내릴 것 같습니다. 한 두달만 있으면 쑥쑥 자라서 맛 좋은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농민에게 비오는 날은 노는 날’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은 하우스 안에서 일하거나 비 맞으며 일하는 농민들이 많습니다. 저희도 하우스 안에서 일했습니다. 일하다 보니 아주 예쁜 개구리 한 마리가 보이네요. 개구리는 모기 등 각종 벌레류를 먹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