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9년 89

별다른 고민 없어 사는 게 재미있다

아침저녁으로 살짝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 우리는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가사처럼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산다. 그래서 사는 게 재미있다’. 반자본주의적인 귀농을 꿈꿨던 우리들이 마음에 새겼던 ‘단순, 소박, 가난한 삶’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별다른 욕심 없이 덜 벌고, 덜 쓰면서 농사로 자립해서 산다. 딱 이만큼만 계속 살면 좋겠다. 덥긴 더운가 보다. 얼마 전에 심은 양배추와 브로콜리 잎이 축 늘어져 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쑥쑥 더 예쁘게 자랄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늦더위가 낮 동안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견딜만하다. 더위라고 해봤자 이제 1, 2주 후면 물러날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편하다. 마음껏 더위를 즐기며 실컷 땀흘리고 차디찬..

밤의 소리

해가 지면 달빛과 별빛밖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골의 밤. 밤이 깊어갈수록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세상. 그런데 과연 시골의 밤이 조용할까요?백화골에서 계절을 몇 번 지내고 난 지금의 대답은 당연히 ‘NO’랍니다. 만약 달력이 없다고 해도 밤에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화골의 밤은 철에 따라 달라지는 온갖 소리로 꽉 차곤 합니다. 겨울은 조용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세상은 죽은 듯이 조용하지요. 초봄까지 겨울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밤의 침묵을 깨는 첫 주자는 소쩍새입니다. 봄 밤, 소쩍새 우는 소리는 사람 마음을 묘하게 싱숭생숭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소쩍새는 이름 그대로 ‘소쩍, 소쩍’ 하면서 울기 때문에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금방..

양은 쟁반

우리 집에는 귀농하던 첫 해부터 부엌 살림으로 합류한 양은 쟁반이 하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고풍스런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옛날’ 쟁반입니다. 5년 동안 막 굴려가며 쓰다보니 벌써 꽃 그림이 많이 닳아버렸네요 서울 집에 살 때는 큰 쟁반이 전혀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요리한 음식들을 쟁반에 담아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이 없었으니까요. 가끔 손님들이 오셨을 때 우아하게 커피잔 몇 개 올려 나르는 용도로는 팬시한 디자인의 자그마한 플라스틱 쟁반으로도 충분했지요. 그런데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다 보니 한꺼번에 많은 양의 그릇을 나를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쟁반이 필수더군요. 그것도 흙바닥 위에 막 굴려가며 써도 될 만한 튼튼한 막쟁반이면 더 좋구요. 손님들과 함께 마당에서 고기판을 벌일 때마다 조그만..

백화골의 여름 휴가철

여름 휴가철이다. 휴가를 맞아 놀러오는 손님들이 마을에 북적이면서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마음이 붕붕 뜬다. 시간을 내어 계곡에도 가고 바다에도 놀러 간다. 농사일 하는 흐름에서도 빽빽하게 줄 서 있던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가을 작물 들어가기 전까지 한숨 돌릴 만한 여유가 생기는 철이기도 하다. 장수에는 이름난 관광지가 없다. 워낙에 덜 알려진데다 홍보가 잘 안 되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다. 방화동 계곡, 장안산, 토옥동 계곡, 지지 계곡, 덕산 계곡, 와룡휴양림 등이 나름대로 이 지역 출신들한테는 유명한 곳인데, 휴가철이면 반짝 사람들이 모여들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피해 조용하고 물 맑고 깨끗한 계곡을 찾아간다. 해마다 손님이 오면 지역 토박이 형님들의 소개로 여기저기 숨은 계곡들을 찾아..

풍요로운 여름 밥상

아침에 나와보니 하늘이 파랗다. 장마가 정말 끝나는 것일까? 일기예보에 앞으로 며칠 동안 ‘맑음’만 표시되어 있다. 옥수수를 수확하러 밭에 나가보니 불청객이 찾아온 흔적이 남아있다. 올해는 고라니가 안 온다고 좋아했는데, 옥수수가 익기를 기다렸나보다. 하룻밤 새 옥수수 몇 개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갔다. 고라니는 멧돼지처럼 밭을 싹쓸이하지는 않지만, 한 번 길을 트면 거의 매일 밤 출근하며 야금야금 먹어치우곤 한다. 더 이상 오지 말라고 냄새가 강한 목초액을 밭 주변에 뿌려 두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봄 상추 심었던 자리에 퇴비를 넣고 밭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는 가을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심을 계획이다. 조금 삽질을 하니 금세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올해는 토마토..

고구마순

몇 주 동안 계속된 장맛비에 고구마 밭이 놀랄 만큼 무성해졌습니다. 고구마 뿌리를 잘 들게 하기 위해선 줄기가 너무 자라도 문제랍니다.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는 고구마 줄기를 어느 정도 쳐서 진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바로 고구마순입니다. 마늘 뿌리를 잘 들게 하기 위해 마늘쫑을 뽑았는데, 그 마늘쫑이 훌륭한 반찬거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번 주 회원들에게 보내는 발송 품목에 고구마순을 넣었습니다. 고구마 밭이 멀리 있다 보니 한 번 나갈 때 좀 넉넉히 끊어 옵니다. 포장하고 남은 고구마순을 갖고 들어와 시간 날 때 껍질을 깝니다. 잎 바로 밑 부분을 똑 꺾어서 한 번 주욱~ 훑어 내리고, 다시 절반으로 똑 꺾어서 남은 껍질 부분을 한 번씩 쭉쭉 훑어..

일조량도 부족한데 일식이라니!

아침 6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도시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농촌에서는 새벽 5시30 이후부터는 전화를 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 새벽부터 일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 늦잠 자다가 전화벨 소리에 깨는 경우, 전화 건 사람은 당당하고 자다 깬 사람이 오히려 쥐구멍을 찾는다. 대신 밤 9시 이후에는 전화하는 사람들이 없다. 9시 30분만 넘어도 전화하기가 망설여진다. 귀농자들이나 밤늦게 전화를 한다. 아무튼, 아침 6시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다 조금만 더 자야지 하는 찰라에 계남면 농민회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농민회에서 전북도연맹 가족모임을 하는데 혹시 쌈채소가 넉넉하면 가져오라고 연락하신 참이었다. 요즘 장마에 고온까지 겹쳐서 쌈채소가 성장을 거의 멈추고 있다고 했더니 ..

자주 감자와 분홍 빛 노을

지난 밤 번개가 20번 정도 세게 백화골에 내리쳤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컴퓨터 같은 전자 제품이 고장날까봐 자다가 일어나 전원 플러그를 뽑아놓고 잤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는 번개로 전자제품이 고장나는 일이 많다. 마땅한 AS센터도 없어서 뭔가 고장나면 고칠 길도 막막하다. 근처 소도시인 전주나 남원까지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번개치는 날이면 다들 조심조심 미리 대비를 한다. 번개가 어찌나 강하게 치던지 무슨 영화에서처럼 온 집안이 순식간에 번쩍 번쩍, 환해졌다. 비도 세차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그렇게 천둥번개에 비가 내렸냐는 듯이 맑은 날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마가 끝난 것일까? 일기예보를 보니 며칠 동안은 비 온다는 그림이 없다. 맑은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