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09년 89

‘럭셔리’ 장수를 부탁해?

“아..아...!,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녁, 우리 장수군 일원에서 촬영 중인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가 방송되오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빠짐없이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아침 6시. 밭에서 이것저것 쌈채소를 따고 있는데 아랫마을 이장님이 스피커로 방송하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다. 평소 말하는 투와 전혀 다른 방송용 목소리를 가진 아랫마을 이장님. 귀농 첫해부터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인데, 이분 방송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 재밌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아무튼 TV가 없는 우리로서는 ‘빠짐없이 시청’하기가 불가능하지만 어떤 드라마기에 장수군에서 촬영을 한다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농촌 드라마가 부활했나? 심지어 군청 게시판에도..

벌레 먹은 사과

사과밭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사과 따는 일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표정이 굳어집니다. 내가 키운 사과도 아닌데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주제넘은 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 내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일손돕기 하러 온 손님들 접대하는 일에만 온 신경을 기울입니다. 지난 일요일, 벌써 몇 년째 매 해 가을마다 우리 백화골 푸른밥상에 맛있는 사과를 공급해주고 있는 민채네 사과밭에 일손 돕기를 하러 갔습니다. 민채네는 10년 전쯤부터 장수에 터를 잡은 선배 귀농자 분들인데, 최소량의 농약만 사용하는 저농약 재배를 하다가 작년부터 무농약 유기 재배로 사과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과 무농약 재배의 험난한 길은 작년부터 이미 예고된 바 있습니다. 주문은 밀려드는데 병든 사과..

가뭄에도 힘차게 자라는 맛좋은 고랭지 가을 작물들

다시 가을 가뭄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 여름 내내 비가 쏟아지더니 올해 날씨 한번 농사짓기 참 어렵다. 이제 한 두달 안에 어지간한 작물들은 수확해야할 텐데, 비가 안 오니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그래도 이것저것 가을 작물들이 잘 자라주어 마음이 편하다. 아침저녁으로 작물에 물주고, 액비 주며 작물들과 함께 가을 농사 속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가을 브로콜리와 양배추도 잘 크고 있다. 수확할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잘 자라주길 바라며 오늘도 좋은 미생물과 깻묵액비를 섞어서 뿌려주었다. 토종 오이가 열렸다. 작년에 받아 놓은 씨로 싹을 틔워 하우스에 심었는데, 올해도 잘 자라주길 바라며 순도 쳐주고 망을 잘 타고 올라가도록 유인해주었다. 토종 오이는 작고 뭉툭하지만 아주 맛나고 노각 오이로 키..

풍년이라 더 서러운 한국 농민들

2009년 아직 농사철이 끝난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유래없는 풍년이라고 한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큰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적도 없었고, 태풍도 지나가지 않았다. 풍년이면 농민들 얼굴에 웃음꽃이 필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다.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서 가격이 더 떨어지게 생겨서다. 가뜩이나 정부에서 앞장서서 농산물 수입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협정을 하고 다니는 이 때,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니 도무지 가격이 맞질 않는다. 농산물 양이 많이 나오니 일손은 더 들어가고 가격이 폭락하니 이래저래 흉년이든 풍년이든 서럽고 어렵기만 한 게 한국 농민들, 특히 소농들인 것 같다. 요즘 일조량이 많아져서 논농사가 완전 대풍이 예상된다고 다들 걱정이다(?). 이번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북한에 지..

백중날 윷놀이

지난주에 백중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백가지 씨앗이 다 쏟아져나오는 날이라는 뜻이랍니다. 추석 전에 이것저것 많은 채소와 과일과 곡식이 나오는 때를 기념하여 마을에서 잔치를 벌이고 신명나게 노는 날이 백중날입니다. 다른 기념일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와 군부독재의 서구화, 근대화 추진으로 전통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그냥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간단하게 윷놀이 정도 하면서 놉니다. 시골 마을에서 행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성차별이 심해서 여자들과 남자들이 한 상에서 밥도 안 먹습니다. 남자들은 사진 속에서처럼 윷놀이니 고스톱이니 하면서 신나게 놀고 여자들은 상차리고 설겆이 하고 고생이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서야 농촌으로 결혼하러 내려올 한국 여자들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초대받지 않은 티타임 손님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추리소설 제목 같군요. 호호호.. 아침에 티백으로 된 허브티를 마시고 컵을 식탁 위에 그대로 올려둔 채 일하러 나갔습니다. 점심 때 들어와 컵을 치우려고 손에 든 순간, 컵 속에 뜻밖의 손님이 얌전히 앉아있네요. 이 풀벌레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1. 메뚜기 2. 여치 3. 베짱이 4. 방아깨비 5. 귀뚜라미 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베짱이가 아닐까 추측 해봅니다. 곤충도감을 열심히 들여다봐도 그놈이 그놈 같아 헛갈리네요. 아무튼 찻잔 속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웬지 우습고도 귀여워 무사히 살려서 밖으로 내보냈답니다.시골은 벌레가 우글거려서 싫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벌레들을 만날 수가 있지요. 그런데 딱 하나 없는 벌레가 있답니다...

9월과 함께 가을 농사가 시작되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저녁에 밭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세게 불더니 손이 시렸다. 9월 말까지 늦더위에 가뭄이 계속됐던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제대로 가을이 시작되는 것 같다. 8월 말에서 9월 초는 여름 농사를 정리하고 가을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하나라도 놓치면 자칫 시기를 놓친다. 장수군 계북면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네 과수원으로 배를 따러 다녀왔다. 사과밭 귀퉁이에 조금 심은 것이라는데, 작년에 우연히 얻어먹고선 맛있어서 회원들한테 발송했다. 반응이 무척 좋아서 올해도 회원들한테 보내기 위해서 미리 이야기를 해 놨는데, 사과 수확이 막 시작되려는 철이라 미안해서 직접 따러 간 길이었다. 바쁜 데도 친구가 배를 함께 따 준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작년만큼 톡 쏘듯이 달지는 않지만..

논밭에 가랑비 내리던 날, 해 짧아져서 아쉬운 저녁

흐린 날씨,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린다. 잠시 제법 굵은 빗줄기도 쏟아진다. 내리 땡볕만 내리쬐던 날씨가 이어지다 비가 내리니 기분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며 비 오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비옷을 입고 밭으로 나선다. 배추를 심으며 아침 일을 시작했다. 어제 땅을 잘 만들어 놔서인지 흙 감촉이 좋다. 흐린 날씨여서 하우스 안에서 일하기가 참 편했다. 정식을 하자마자 해가 너무 쨍쨍 쬐면 안 좋은데, 배추가 뿌리를 잘 내릴 것 같다. 농업 관련 제품 이름들은 재미있는 게 많다. ‘마니따 고추’, ‘가뜨니 분무기’, ‘힘센 약제’ 등등... 배추를 심은 뒤 ‘수시로 알타리무’를 심었다. 수시로 심어도 잘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알타리무는 가을에 심어야 맛이 좋다. 비를 맞으며 알타리무 씨를 조심조심 넣었다. 한..

찬바람이 불면~ 우린 배추를 심어요!

사고를 낸 문제의 경운기다. 윗집 이웃인 용민 아빠가 끌고 내려가다 보니 경운기가 또 말썽을 부려서 중간에 그냥 세워놨다고 한다. 술 많이 마시는 시골 할아버지들을 기다리는 건 크고 작은 경운기 사고다. 어찌나 사고가 많이 나는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시골 생활에 필요하다 하여 배우기는 했지만 이제는 거의 아무도 경운기에 손대지 않고 있다. 나도 처음 1, 2년 경운기를 몰고 다녀보니 아무 곳이나 잘 올라간다는 장점이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위험한 상황이 많아 지금은 아예 몰지 않는다. 한밤중의 소동으로 정신이 없어서 다음날 아침이 참 피곤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당분간 일은 못하게 되셨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고 한다. 술이 깨서는 너무 고맙다고 연신 인사말을 건네신다. 들깨가 참 잘 자랐다. 쑥쑥 키..

늦여름 바닷가, 일요일 밤의 소동

늦더위가 계속된다. 한낮에는 일을 못할 정도로 푹푹 찐다. 올 여름 긴긴 장마로 나름대로 시원하게 보냈는데 이 정도 더위쯤은 한번 맛봐야지 하는 듯이 날씨가 덥다. 그래도 조금씩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져서 기분 좋게 땀 흘리며 일하는 하루하루다. 땅콩, 들깨, 옥수수가 아주 잘 자랐다. 가을 옥수수 심는다고 푹푹 빠지는 밭에서 고생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람 키보다 훨씬 더 컸다. 이 밭에 고라니가 들락날락하는데 이번에는 주변에 울타리를 확실하게 쳐서 피해를 줄일 계획이다. 가을 작물 심기를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오전에 부랴부랴 무씨를 사다가 만들어놓은 밭에 심었다. 무를 심고 올라와 참외밭을 정리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가 맞았다. 가을 무가 잘 자라려나보다. 여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