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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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7년~2022년

영화 ‘영혼의 순례길’과 2022년 첫 파종

백화골 2022. 2. 19. 21:53

 

 

아직 영하 10도. 많이 춥습니다. 항상 봄 되기 직전이 가장 추운 것 같아요. 그래도 햇볕이 좋은 날엔 낮에 일할 만하지만, 오늘처럼 흐린 날이면 두꺼운 옷을 입어도 손발부터 꽁꽁 얼어붙습니다. 하지만 추워도 이제 씨앗을 넣어야할 시기입니다. 오늘은 마침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입니다. 우수라는 절기에 걸맞게 살짝 살짝 흩뿌리는 눈발을 맞으며 첫 파종을 했습니다. 2022년 백화골 농사 이제 시작합니다.

 

멀리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여행자로 겨울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쉬었습니다. 명상센터에도 가고, 책과 영화도 많이 보고, 아름다운 자연 속 산책길에서 걷기도 많이 걸었습니다. 이렇게 유유자적 보낸 겨울 농한기 동안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 얘기 한 편으로 올해 백화골 농사 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영혼의 순례길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절해요”

 

 

 

 

 

 

 

 

 

 

 

 

 

 

 

 

 

 

 

 

 

 

 

 

 

“삼보일배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입니다” 티벳 작은 마을 주민 11명이 인생의 꿈인 순례 여행을 계획하고, 성지 라사와 성산으로 가는 2500km 삼보일배 여행을 시작합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함께 종일 삼보일배를 하고, 저녁에는 천막을 친 뒤 밥을 먹고, 기도를 하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꼭 붙어서 잠을 잡니다. 이들이 삼보일배를 하며 몇 달에 걸친 순례를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장양 감독의 여행영화로, 실제 티벳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여행길에서 아이를 낳기도 하고, 노인이 죽기도 합니다. 강물이 흐르는 길에서도, 눈으로 쌓인 설산에서도 삼보일배를 멈추지 않습니다. 춥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절하고 걷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한 자비기도를 하면서 걷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농사를 지을 때 우리의 마음가짐도 삼보일배 하듯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사실 농사를 짓는 일은 길러낸 수확물을 바로 누군가가 먹는 일이므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유기농은 더더욱 그런 면이 강하고요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농사짓는다면 우리 또한 더 행복하게 농사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첫 씨앗 ‘브로콜리, 양배추, 고추’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날씨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서 파종을 미루다가 이제 더 이상은 시기를 놓칠 수가 없어서, 어쩌다보니 춥고 바람 부는 날에 첫 파종을 하게 됐습니다. 춥긴 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찾아올 따뜻한 봄과, 이 씨앗이 자라 크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씨앗을 넣었습니다.

 

 

씨앗을 넣고 이름표를 붙이고 온상 속에 넣어 물을 주고 온열선으로 바닥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니 금세 온도가 올라갑니다. 이불을 두 겹 세 겹 덮어준 뒤 바람이 들어오는 하우스 문틈도 헌 담요로 꼭꼭 막아 최대한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곧 만나게 될 초록색 작은 생명들이 너무나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