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7년~2022년

길고 긴 가을 장마, 그래도 잘 자라주는 작물들이 고마워요

백화골 2021. 9. 1. 23:14

느닷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도 서늘하고 폭염도 사라졌어요. 하지만 때 아닌 장마가 길게 이어집니다. 이 시절엔 원래 비가 안 와서 가을 작물 심고 물 주느라 바쁜 시기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히려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까지 작은 태풍 하나만 슬쩍 지나간 터라 감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폭염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낮에는 밖에 돌아다닐 수조차 없을 정도로 뜨거워서 새벽과 오후 늦게만 일을 했습니다. 해 뜨기 전에 밭에 나와 일 시작하고 해진 다음에 일 마치며 집에 돌아가는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다행이 그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농작물들이 잘 자라준 덕에 하루하루 재미있게 농사일 하며 지냈습니다. 여름 밭 풍경은 푸릇푸릇 참 아름다워요.

 

 

올해는 토종 자색 찰옥수수(쥐이빨옥수수), 삼색 옥수수, 초당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토종 자색 옥수수는 저희가 16년 전 유기농사 짓는 이웃에게 씨앗을 받은 이후로 매년 씨를 받아서 키우고 있는데, 크기가 작고 수확량도 적습니다. 날씨가 이미 ‘토종’이 아니다 보니, 재래 종자들은 점점 농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삼색 옥수수는 최근에 나온 개량종으로 찰옥수수와 초당옥수수의 중간 맛 쯤 되는 품종이구요. 쫀득쫀득함과 단맛이 골고루 섞여있어 사람들 반응이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초당 옥수수는 ‘초당 두부’처럼 강릉이 고향인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super sweet corn'을 한자말로 번역해서 초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입 품종입니다.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단맛이 강해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이지요.

 

토종 자색 찰옥수수와 삼색 옥수수는 이미 수확을 마쳤습니다. 회원분들이 어떤 옥수수를 선호할까, 토종 옥수수가 수확량도 적고 농사도 어려우니까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내년에는 확 줄여서 심어야지, 이렇게 맘먹고 꾸러미 회원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삼색옥수수 표가 더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토종 옥수수가 좋다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옛날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 그래도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내년에도 다시 토종 옥수수를 많이 심기로 했답니다.

 

 

백화골 밭들은 다 깊은 산속에 있어서 벌레 소리와 짐승들 소리를 빼면 정말 조용합니다. 깻잎을 한장 한장 따다보면 차분하게 깻잎 따는 동작에만 오롯이 집중되는 기분이 좋습니다.

 

 

엄청난 폭염 뒤로 계속 비가 내립니다. 여기가 한국인지 동남아 열대우림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계속 비 오고 해 뜨고, 그러다 또 폭우가 쏟아지고... 그래도 작년 50여 일 동안 지속됐던 장마에 워낙 예방주사를 세게 맞은 덕인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비 안 오는 틈틈이 일을 했습니다.

 

 

비 오는 틈틈이 게릴라처럼 힘들여 밭을 만들고 심은 초당 옥수수가 폭우에 다 쓰러졌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기후변화로 인해 거세미나방 유충 피해가 유독 심해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도 슬쩍 나타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짧아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맑은 날씨를 즐겨봅니다.

 

천둥 벼락까지 동반한 요란한 폭우를 피하기 위해 잠시 안에 들어와 있는데, 몇 년 전에 백화골 농장에 찾아와 같이 일했던 벨기에 친구한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우연히 서점에 가서 ‘김치’라는 제목의 책을 넘겨보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면서, 사진 속에 나오는 사람이 당신 맞느냐는 메시지였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확인해보니, 역시 몇 해 전 우리 농장에 왔었던 미국의 사진작가 친구가 찍은 사진들이 벨기에 요리사의 책에 사용되어 출판된 것이었어요. 코로나로 서로 여행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또 서로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기억하게 되는구나 싶어서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벨기에 친구, 미국 친구와 연락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 와중에 또 베트남 친구와도 연락이 되었는데, 베트남은 지금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도시가 봉쇄되고 백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베트남에 가서 꼭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올해 봉사자 없이 일하다보니 특히나 더 옛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아래 짧은 동영상은 벨기에 친구가 만들어서 보내준 것인데 재미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