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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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잘 하고 싶은 마음! 부담을 버려야지… (2007.03.23)

백화골 2009. 3. 4. 10:58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로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 이성부 

완연한 봄이 오려면 장수는 아직 멀었다. 찬바람 맞으며 일하다보면 얼마 안 있어 콧물이 줄줄 흐른다. 아직 차가운 날씨 때문일까? 올 한 해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꾸만 마음이 묵직해진다. 3년차라 그런가보다. 더 잘 해야 할 것 같고, 더 폼나게 해야 할 것 같다.

마을 밖에 빌린 노지밭. 주변에 오가는 어르신들이 많아 아무래도 이목이 신경 쓰인다. 부담 없이 골을 탔으면 금방 끝날 일을 줄 맞춰 탄다고 오래 걸렸다. 사실 꼭 반듯하게 골을 탈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요즘 우리는 농산물회원제와 별도로 그 때 그 때 조금씩 더 나오는 농산물을 어떻게 팔까 고민하고 있다.

매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거래로 농산물을 팔다보면 사실 힘들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인터넷으로 회원을 모집해서 안정적으로 연락을 하고 함께 농산물을 나누고자 하는 일이다. 홈페이지를 만들까? 인터넷 카페를 만들까? 사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가장 보기 좋긴 하지만 돈과 품이 꽤 들어간다.  

이모저모 고민하다 문득 보니 우리가 요즘 회사 생활하던 시절처럼 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끈하고 보기 좋은 포장, 앞서가는 참신한 아이디어, 그럴수록 쌓이는 부담감과 중압감... 우리는 지금 전략회의 때 상반기 프로젝트 기획안 제출하려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제철 농산물 회원제도 작년에는 우리의 텃밭농사 규모를 조금 더 늘려 도시 이웃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부담없이 시작했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었고, 회원들도 모두 기쁘게 우리 농산물을 받아주어 행복하게 농사지을 수 있었다. 회원제를 통해 농사로 경제적 자립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작년보다 훨씬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긴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아지고 회원도 작년보다 조금 늘리려고 하니.... 힘들다. 이런 부담을 털어버리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편하고 소박하게 농사일 시작하자고 아내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거창한 홈페이지를 만들기보다는 작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농산물을 나눌 좋은 이웃을 찾기로 했고, 모듬농산물 회원제도 작년처럼 우리부터 행복하게 건강한 밥상을 차린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아침저녁으로 아직은 많이 춥지만, 1∼2주만 지나면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