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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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농사 시작! 일에 적응하느라 고생, 무서운 들불에 혼쭐 (2007.03.15)

백화골 2009. 3. 4. 10:57

한 해 농사를 시작했다. 이번이 세 번째 농사! 겨우내 몸이 근질근질 했었는데 막상 삽을 들고 밭에 나가보니…… 역시 농사일은 만만치 않다. 보통 직장에서 3년차면 일에도 익숙해지고 팍팍 성장하는 시기라 가장 일을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농사꾼 3년차는 아직 초보 중에 초보일 뿐.

수십년 농사지으신 어르신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년차다. 작년에는 운이 좋아서인지 농사도 풍년이었고 농산물 팔아서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는데, 올해 막상 농사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떨린다.

한미 FTA 체결되면 농촌 기반 자체가 망가질 것이 뻔하고, 겨울내내 따뜻해서 여름에 병충해가 심할 것이라는 어르신들 말씀도 걱정되고, 작년보다 농사 규모를 조금 늘렸는데 농산물을 다 어떻게 팔아야하나, 직거래는 올해도 잘 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선다.

사실 FTA 체결을 앞두고 있는 요즘 농촌 분위기 참 어둡다. 그래도 우리는 올해 농사를 시작했다. 1년 넘게 발효시킨 퇴비를 밭에 뿌리고, 하우스에 감자를 심었다. 농산물 회원제를 위해 여러 가지 씨앗들을 포트(정식하기 전에 작물을 키우는 작은 화분 같은 것)에 넣었다.

오랜만에 일하니 몸이 적응을 못해서 힘들기는 하지만 참 행복하다. 하지만 아직도 미숙한 농부들이라 오늘 대형 사고를 냈다. 어렵게 마을 밖에 빌린 땅 밭 정리를 하다가 하마터면 큰 불이 날 뻔했다. 

밭 정리를 하던 아내가 풀들을 치우다가 다른 농부들이 다 그렇게 하듯 밭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대고 갑자기 불이 여기저기로 번졌다. 제대로 대비도 못하고 있었던 터라, 하우스에 불이 옮겨 붙고 한바터면 옆 밭과 논두렁에까지 불이 붙을뻔 했다. 1시간 동안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들고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겨우겨우 불길을 잡았다. 

겨우겨우 불길을 잡은 후에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아내. 

지나가던 할머니가 잡초 깨끗이 잘 태웠다고 칭찬하신다. 우리가 무서운 들불에 혼쭐나는 모습은 못 보셨나보다.

지난 1주일간 많은 일이 있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장수군농민회 영농 발대식이 장수읍 장터에서 펼쳐졌다. 영농 발대식은 농민회의 가장 큰 행사다. 함께 모여 '올해 농사 잘 지어보자'는 각오도 다지고, 농민운동도 열심히 하자는 힘찬 출발의 자리다. 고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치러지는데, 웬지 해가 갈수록 분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다. 

체결을 앞두고있는 분위기지만 농민들은 끝가지 포기하지 않는다. 농민회 회원들이 모여 차량 시위를 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눈 오는 날 감자를 심었다. 퇴비를 뿌리고 로터리를 치고...

관리기로 골을 탔다. 농기계 다루기는 아직도 어렵다.

쭈그리고 앉아서 감자를 심었더니 허리가 뻐근하다. 올해는 수미(보통 시판되는 감자), 대서(수미보다 달고 찰진 감자), 라자(자주감자의 신품종) 종자를 심었다. 5월 말 수확 예정. 작년에 물 조절 실패로 예상보다 수확량이 적었던 지라 올해는 물 관리에 철저히 신경을 쓸 계획이다.  

텃밭 하우스에 쌈채소를 심기 위해 쟁기질을 하고 있다. 곡괭이질 정말 힘들다.

연작 피해를 막기 위해 겨우내 벗겨놨던 하우스 비닐을 다시 씌웠다. 요 작업도 물론 아주 어려웠다.

농촌에선 면사무소 갈 일이 참 많다. 사람들로 복작거리지도 않고 조용한 게 참 좋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농업.건강 중심 도시 장수'라는 카피는 영 생뚱맞다. 세계 최고라는 말도 참 우습고, 여긴 엄연한 농촌인데 도시라는 표현도 어색하다. 아무튼 농촌의 행정 기관은 도시와는 많이 다르다.

아내가 쌈채소 씨앗을 넣고 있다. 아주 정교한 작업이다. 무슨 디지털 제품 만드는 것 같다.

벌써 몇시간째인지도 모르겠다. 첫 씨앗을 넣는다는 기쁨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작년 가을에 심어두었던 호밀이 예쁘게 올라왔다.(호밀은 재배용이 아닌 땅심 기르기용 작물이다)

작년에 우리가 경작했던 밭이다. 열심히 땅을 만들고 호밀까지 뿌려놓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옆에 인삼밭이 들어섰다. 인삼은 워낙에 농약을 많이 치는 작물이라 옆에서는 친환경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다. 그래서 아깝지만 이 밭을 포기했다. 여기서 감자와 고구마, 들깨 등을 재미나게 수확했었는데... 

쌀겨, 왕겨, 풀, 음식물 쓰레기, 뒷간 거름, 낙엽 등을 미생물과 함께 1년 이상 직접 발효시킨 최고 품질의 퇴비다. 하얗게 흰 곰팡이(유익 미생물)가 올라와 있다.

퇴비장까지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전부 손수레와 삽으로 운반해 거름을 냈다. 역시 농사의 기본은 삽질!!

아랫집 막내둥이 선길이도 삽질을 하겠다고 난리다. 손으로 안 되니 배로 밀어보기까지... 

마을 전체가 놀이터인 행복한 우리 마을 아이들. 제일 뒤에 따라가는 꼬맹이는 작년까지 엄마 치마폭만 잡고 따라다니던 용민이. 갑자기 쑥쑥 크더니 이젠 형들 놀 때 제법 깍두기로 끼어 어울려 논다.

거름 내는 일 하다 허리가 뻐근해 아내를 졸라 올해 처음으로 먹은 참! 역시 일하다가 참으로 먹는 막걸리가 가장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