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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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농한기, 어느 하루! (2007.02.28)

백화골 2009. 3. 4. 10:52

아침에 일어나 보니 툇마루에 예쁘게 보자기로 덮여진 쟁반이 놓여 있다. 열어보니 정성스럽게 지은 밥과 미역국이다. 아랫집 선길 엄마가 집에 돌아온 지 오랜만이라 밥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갖다 준 고마운 선물이다. 마음씨 착하고 사람 좋은 선길 엄마 덕분에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바람이 따뜻하다. 트럭을 몰고 길을 나섰다.

작년에 친환경 인증 서류 만드는 것을 도와드리며 친해진 천천 표고작목반 형님들의 호출! 표고버섯 배지로 쓰이던 참나무를 땔감으로 쓰라고 트럭에 실어주신다. 나무 없는 것을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는지. 1톤 트럭 한 가득 나무를 실었다.  

표고버섯 가격이 안 좋아서 나무 배지를 사용하여 수확하는 일은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수입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 치워버리고 거기에 톱밥으로 만든 배지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그 중 쓸만한 나무는 그늘에 세워놓고 물을 주면 표고 2,3년은 따먹을 수 있다고 표고버섯 키우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집에 돌아오려고 하는데 작목반 한 형님의 친구분이 회를 떠가지고 방문하셨다고 함께 먹고 가라고 하신다. 부안에 사시는 분인데 알이 꽉찬 쭈꾸미와 숭어회, 낙지를 가지고 장수에 친구분을 만나러 오신 길이었나 보다. 영문도 모르고 엉겁결에 낀 점심 식사 자리!  

농협, 농업기술센터 관계자, 지역 군인, 표고작목반원들, 토박이인 식당 아저씨와 아주머니 등등. 회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다. 대부분은 그냥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회가 있으니 같이 먹자(^^)는 권유에 함께 점심을 먹게 된 것이다. 도시 같으면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만한 상황인데, 좁은 지역에서 서로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보니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소주가 돌아간다. 시골에 와서 살면서 술 권유를 마다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 더더욱 힘들다. 그거 다 받아먹다 보면 귀농 2, 3년만에 완전히 건강 망치기 일쑤다. 귀농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지지만 술독에 빠지다 보면 오히려 도시에 있을 때보다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술 권유를 이리 빼고 저리 빼가며 회에 집중(^^)했다. 쭈꾸미가 제철인지 알이 꽉차서 무척 맛난다.술이 돌아가다 보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사라지고 표고작목반 형님들만 남았다. 술에 좀 취하셨는지 숯가마에 가자고 하신다. 사실 아직은 바쁜 철이 아니라 다들 시간 여유가 있다. 또!! 따라갔다. 형님들이 입장료 다 내주시고, 직접 산에서 채취한 고로쇠액까지 마시라고 주신다.

땀빼고 고로쇠액 마시고 시간 참 잘 간다. 오늘 정말 운 좋은 날이다.  시골 숯가마는 도시 찜질방과는 아주 다르다. 아랫동네 어르신들이 어디어디 숯가마 참 좋더라 해서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일단 샤워 시설이 없거나 변변치 않고 아주 허름한 흙집, 혹은 동굴 같은 방 몇 개가 있을 뿐이다.

도시에서 찜찔방에 익숙해져 있었던지라 처음에는 아주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진짜 참나무로 불을 때고 흙으로 빚은 방에서 땀을 빼면 몸에 좋다고 도시에서도 많이들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좋은 숯가마에서 땀뺀 후에는 샤워를 며칠간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씻지도 않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회 먹고 숯가마에서 땀빼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하다. 추워야할 시기인데도 날씨가 포근하다. 여기저기 벌써 꽃몽오리가 피고 푸릇푸릇한 기운이 하나둘씩 올라온다. 다들 날씨가 따뜻해지니 원래 농한기인데도 마음이 조금씩 성급해진다.

그래도 농촌에서 농한기에는 푹 쉬어야 한다고 아직은 여유있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에 돌아오니 6시, 하루가 다 갔다. 트럭에서 표고버섯이 아직 자랄만한 나무를 골라서 아랫집 선길이네와 윗집 용민이네에 나누어주었다. 열심히 나무를 내리다 보니 캄캄해진다. 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불을 땠다.

오랜만에 차린 맛있는 저녁 밥상, 횡성 장모님이 담아주신 된장과 문경에 귀농한 귀농학교 동기분이 주신 고추 장아찌로 밥 몇 그릇을 해치웠다. 밥을 먹고 밖에 나가보니 아직은 겨울이라고 밤바람이 차다. 달이 점점 차올라 오는 게 보기 좋다. 대보름이 가까워졌다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