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자주 내려 반갑다. 지난 주말에 이어 오늘 하루 봄비가 내렸다. 우리는 월, 수, 금요일에 발송 작업을 하는데 고맙게도 토, 일, 목요일에 비가 온다. 아무리 단비라 해도 비 오는 날 발송 작업 하는 건 참 힘들다. 운 좋게도 발송하는 날을 피해서 비가 적당히 내려준다.
본격적인 가족회원 발송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달라지는 건 우리 밥상이다. 김장 김치와 마른 김, 마른 미역 등으로 버티던 식탁이 매끼 풍성한 야채로 행복해진다. 회원들에게 보내고 남은 야채가 우리 몫이다. 농산물을 밭에서 바로 수확해 먹는 일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즐거운 일이다.
그날 그날 남는 야채들을 모두 섞어 주로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다. 오늘은 상추, 적근대, 고수, 배추, 치커리 등이 주 샐러드 메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소스를 다르게 하여 먹으니 매일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가족회원 발송 첫 해에는 회원들한테 보내느라 우리가 키운 농산물을 거의 구경도 못했는데, 이제 넉넉히 수량 예측을 하며 심기 때문에 우리도 제대로 꼭 챙겨 먹는다.
곁순 제거 방법은 작물마다 다 조금씩 다르다. 몇 마디까지 기르고 어디서 자식순을 키우고 손자순을 자르고… 하도 여러 가지 작물을 키우다 보니 헛갈리기도 한다. 오랜만에 호박 곁순을 지르려 하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떡하나 고민하며 호박 앞에 앉아 있으니 손이 기억을 해낸다. 어느 새 호박순을 척척 지르고 있다. 농사일이라는 게 경험이 참 중요하다.
올해도 통배추가 잘 자랐다. 물론 벼룩 벌레가 습격을 하여 구멍이 많다. 배추는 원래 벌레 때문에 유기농 재배가 어려운 편에 속한다. 작년에 우연히 배추를 3월 초에 심어봤는데, 날씨가 추워서 초기 벌레 피해가 적었다. 4년 만에 배추 재배에 처음으로 성공한 참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심었는데 갑자기 며칠 이상 고온이 계속되면서 벼룩벌레들이 일찍 깼다. 여러 가지 유기농 방제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이길 도리가 없었다. 빨리 키우는 수밖에.
요즘 환율 때문에 중국 농산물 수입이 줄어든 데다 가뭄으로 배추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배추뿐 아니라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편이다. 마트에 나가보니 일반 관행농 배추가 1포기에 4~5천원씩 한다. 이럴 땐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시세대로 무조건 비싸게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싸게 팔 수도 없고. 결국 2천5백원으로 정했다. 작년에는 이맘때쯤 배추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우리도 1천원에 판매했었다.
드디어 5년 만에 브로콜리를 예쁘게 재배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아직 수확은 안 해서 장담은 못하는 상황).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비슷한 과인데 이 두 놈은 정말 벌레가 많이 붙는다. 진딧물이며 나방 애벌레들이 득실득실 한다. 작년까지는 브로콜리 보낼 때 아예 벌레들을 다 떼어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서 보냈다. 우리가 한 번 키워보고 나서부터는 브로콜리랑 양배추는 관행농으로 키운 건 왠만하면 안 먹는다. 농약을 정말 많이들 친다고 한다.
아무튼 이 놈들도 유기농 재배가 상당히 어려운데, 배추처럼 하우스에다 아주 추울 때 심어봤다. 그리고 미리미리 식용유와 달걀 노른자를 뿌려서 벌레가 달라붙는 걸 방지하고, 벌레의 알을 분해한다는 키틴 미생물을 열심히 뿌려주었다. 배추 옆에 키우면서 액비도 사흘이 멀다하고 쳐줬다. 다음주 에 수확할 예정인데 지금까지 결과는 아주 좋다. 예쁜 브로콜리를 수확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백화골 주변에 아카시아 꽃(정확한 이름은 아까시지만 입에 붙은 대로 아카시아라고 부르고 싶다)이 활짝 폈다. 첫해에는 아카시아 효소도 담그고 그랬는데, 효소 담그는 건 시간도 많아야 하고, 이래저래 우리랑 잘 안 맞는 일인 것 같아서 점점 안 하게 된다. 그래도 지나가다 아카시아 꽃 한 송이씩 뜯어먹는 재미는 쏠쏠하다.
진보신당 공동 고구마 밭에 고구마순 심는 날. 역시나 밭 만들 때 왔던 많은 사람들이 다 빠지고, 게다가 행사를 제안한 당원도 마침 바쁜 일 생겼다고 안 오고, 네 명이서 일을 시작했다.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하여 오후 2시부터 시작했는데 네 명이서 언제 다 끝내나 암담했다. 일 마치고 같이 저녁 먹고 집에 돌아오는 데 지난 주 금요일처럼 비가 내려 고구마는 활착이 잘 되었을 터이다.
오늘은 우연히 우리집에 놀러오신 손님과 함께 진안의 한 귀농자 집을 방문했다. 진안은 요즘 귀농자들 사이에서 최고로 뜨는 곳이다. 현실적인 귀농정책을 펼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귀농한 지 아주 오래된 분의 집이었는데, 들어가는 길가의 계곡이 참 멋졌다. 동네 이름도 ‘무릉’이라고 한다. 강원도와는 또 다른 느낌의 멋진 절경에 잠시 차를 멈추고 경치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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