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봄 햇살이 따뜻하게 비췄다. 아침이면 영하 7, 8도의 추운 날씨 탓에 일하러 나가기도 싫던 최근 며칠과 달랐다. 영상의 기온에 화창한 봄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일 좀 많이 할 수 있겠네 하고 마당에 나와 보니, 뭔가 화들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뜻밖에도 하얀 토끼다. 작년에 우리 하우스 안에 산토끼가 내려와 양상추를 마구 먹어치우던 생각이 나서, 토끼를 보니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고 귀엽기는 하지만 고라니도, 토끼도 농촌에서는 밭을 망쳐놓는 불청객일 뿐이다.
토끼가 쉽게 잡힐 리가 없다. 마구 도망간다.
마침 우리집 주변을 지나던 윗집 용민 아빠를 불러 토끼를 쫓기 시작했다.
쫓고 쫓기고...
아랫집 마당으로 도망갔던 토끼가 다시 우리집 마당으로 뛰어 들어온다.
툇마루 밑으로 들어가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토끼.
10여 분 간의 토끼몰이 끝에 결국 용민 아빠 손에 토끼가 잡혔다.
마침 마을 이장님이 다른 사람이 버린 새장을 주워 둔 게 있어, 거기에 임시로 토끼를 집어넣었다. 용민 아빠가 자기 집 마당으로 데려가는 중.
새장 속에 갇힌 토끼. 강원도 시골서 자란 용민 아빠가 옛 추억을 떠올린다. 어렸을 적 토끼탕을 해 먹고 귀는 귀마개로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따뜻했다나... 토끼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한바탕 토끼 소란이 끝나고, 하우스에 배추를 심으려고 올라가 보니 하우스 옆 귀퉁이 땅에서 잘 자라던 시금치가 몽땅 사라졌다. 큼직한 고라니 발자국이 선명하다. 조금만 더 키워서 조만간 뽑아서 먹는다 먹는다 하다가 배고픈 고라니가 다 먹어치웠다. 올해 이 밭은 주변에 울타리를 잘 쳐야 작물을 수확할 수 있을 듯하다.
배추를 심고 물을 주고 있다. 작년에도 벼룩벌레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이맘때 하우스에 배추를 넣어서 벌레 피해 없이 아주 잘 된 적이 있다. 하우스에는 감자,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애호박, 쌈채소 등을 키울 예정이다.
윗집 용민이와 또래 녀석들이 어린이집 끝나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올라온다. 시골 와서 제일 좋은 건 아이들이다.
토끼를 보더니 아이들이 반색을 한다. 어디서 난 거냐고 묻길래 “용민이 아빠랑 삼촌이랑 같이 우리집 마당에서 잡았지” 하니까 “에이, 뻥치지 마세요.” 한다. 하긴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긴 하다. 용민이가 “이 토끼는 누구 거예요?” 하고 묻는다. “용민이 아빠가 잡았으니 용민이 거지” 하니까 너무도 좋아하며 이 토끼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친구들과 진지하게 의논한다. 용민 아빠와 용민이가 생각하는 토끼의 미래는 많이 다른 듯하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진다. 해지는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은 이곳저곳 관광지를 찾아다니는데, 우리 마을의 일몰은 세계 어디에 내 놔도 뒤지지 않게 아름답다. 우린 매일 세계 최고로 멋진 일몰을 보며 산다.
윤제네가 부안에 갔다 오는 길에 조개를 사왔다며 마을 잔치를 벌였다. 해산물 먹기 힘든 시골에서 조개를 굽는다고 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사람이 많아서 숯불에 굽는 대로 조개가 사라진다.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밤늦도록 그치지 않는다. 토끼로 시작해 조개로 끝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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