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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영화 <레몬트리>

백화골 2009. 3. 11. 21:43

우리 집에는 TV가 없지만, 몇몇 분들이 상상하듯 고요하고 적막한 시골 저녁의 밤 풍경이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죠. 일하고 들어와 씻고 저녁 먹고 나면, 자기 전까지 주로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가끔 화제의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받아 볼 때도 있고요.

영화 <레몬트리>도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영화인데, 국경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여인의 레몬 농장 근처로 이스라엘 국방장관 부부가 갑자기 이사 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네, 다음부터는 당연히 짐작할 만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군인들의 초소와 철조망이 세워지고, 레몬나무를 베어버리겠다는 통지문이 날아들고, 팔레스타인 여인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이러한 과정들이 도식적으로 펼쳐지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물과 에피소드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어느새 각 인물의 감정선에 푹 빠지게 되죠. 한마디로 좋은 영화이자 아주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펼쳐지긴 하지만, 이 영화는 한 농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자기 손으로 평생 가꿔온 레몬 농장을 베어버리겠다는 통지문을 받고서 살마(주인공 여인의 이름입니다)가 한줄기 눈물을 떨어뜨릴 땐 제 마음도 함께 철렁 떨어져 내렸습니다.

농장 출입금지 명령 때문에 바로 눈앞의 레몬 나무들이 말라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심전심으로 괴로웠고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살마와 함께 농장을 가꿔온 할아버지 일꾼이 법원에 출두해 진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어요.

“판사님! 저는 그 나무들을 단순히 물과 비료만 주어서 키운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나무들에게 말을 걸고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귀를 기울였지요. 저는 트랙터도 쓰지 않고 이 두 손만으로(이 장면에서 두 손을 앞으로 번쩍 치켜듭니다) 평생 농장을 가꿔왔습니다. 그 레몬 농장의 땅은 요르단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 
저도 이 할아버지처럼 말할 수 있는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평생 일하며 살아온 투박한 두 손을 당당하게 앞으로 내밀고 말이에요.

모두에게, 특히 농사짓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레몬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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