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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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2008.08.03)

백화골 2009. 3. 4. 12:54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부었다. 오전 내내 집에서 올해 마지막으로 넣을 가을 작물 심을 곳과 시기에 대해서 계획을 세웠다. 비가 그치고 물이 어느 정도 빠진 듯 하여 장터에 가서 이것저것 씨를 사 가지고 와서 파종을 했다. 모종 키울 하우스에 풀이 많이 자랐기에 낫을 들고 구석구석 풀을 뽑고 있는데, 갑자기 땅벌들이 날아오른다. 소리지를 사이도 없이 볼에 딱 한 방을 쏘였다.

조금 따끔하여 집에 들어와 약을 바르고 계속 일을 했다. 시골에 온 후 벌에 몇 번 쏘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계속 밭에서 풀 뽑기 작업을 하는데 온 몸이 가렵다. 대낮부터 모기들이 달려드나 하고 계속 일을 하는데 가려움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 팔을 들춰보니 이미 두드러기가 심하게 돋아 있다. 팔 뿐 아니라 온 몸에 두드러기가 온통 벌겋게 번져 있다.

땅벌이 무섭다더니 정말 심하다. 이웃이 보더니 빨리 병원에 가라고 재촉한다. 일단 장수에 딱 한 곳 있는 응급실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가는 길에 경찰이 검문검색을 하길래 “벌에 쏘여 응급실에 간다”고 했더니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고 그냥 보내준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벌에 쏘인 분들이 많다며 주사를 놔주고 링게르를 꽂아준다. 휴가철이라 장수에 놀러왔던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에 북적거린다. 

몸이 으슬으슬 춥다. 벌에 쏘이면 알레르기 반응으로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고 체온이 떨어진단다. 혈압도 떨어지고. 그러다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겁이 덜컥 난다. 태어나 처음으로 응급실에 링게르를 꽂고 누워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옆 침대에는 한 고등학생이 갑자기 쓰러져서 실려와 누워 있다. 이 지역 학생이 아닌데, 학교에서 새벽부터 새벽까지 공부만 하는 바람에 무리를 하다 부모님을 따라 잠시 장수에 온 게 화근이었나 보다.

너무 피곤한 터에 장거리 이동까지 해서 탈이 났다고 한다.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사는 여기서는 더 이상의 결과를 알아보지 못하니 전주나 남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누워 있는데 잠시 후 119 대원들이 할머니 한 분을 싣고 온다. 화장실에서 뒤로 쓰러져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단다.

할머니는 주사를 맞고 링게르를 꽂으니 이내 정신을 차리셨는데, 횡설수설하신다. 계속 막내 아들을 애절하게 부르며 어디 있냐고 찾는다. 자식들은 다 서울 가 있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라고 한다. 간호사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지 “할머니, 나 할머니 아들 아냐”라며 응수한다. 할머니의 신음 소리와 아들 찾는 소리에 분위기가 싹 가라앉는다.

누워 있는 사이에 점점 어지럽고 힘이 없어진다. 한 시간이 지나도 두드러기가 가라앉지 않고 몸도 점점 추워진다. 그러다 잠시 몽롱해지면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한결 몸이 좋아졌다. 링게르 주사를 빼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다리가 휘청거린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약사를 찾아가 약을 지으며 물어보니 확률이 적기는 하지만 벌에 쏘이면 알레르기 쇼크사로 죽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특히 땅벌이 세다고. 오죽하면 ‘못 말리고’, ‘날 울리는’ ‘땡벌’이라는 노래 가사까지 만들어졌을까(땡벌은 땅벌의 사투리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내가 해야할 일까지 하느라 이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도 몸이 한결 좋아지고 벌에 쏘여 큰 일 날 뻔한 상황을 넘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래저래 방심하지 않고 조심조심 일해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