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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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시골집에 무슨 선물 들고 갈까? (2008.07.28)

백화골 2009. 3. 4. 12:52

귀농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보니 도시에서 놀러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 형제, 친척, 친구, 옛 직장 동료들... 1년 내내 손님 안 오는 달이 없지만, 연휴가 낀 주말이라거나 요즘 같은 휴가철엔 저녁마다 온 동네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곤 한다.

반가운 얼굴을 찾아 먼 길 달려 이곳까지 내려오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그냥 올 리가 없다. 손님들은 도시에서 떠나기 전 길 찾아오는 법 설명을 한참 들은 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근데 뭐 필요한 거 없어?”
편한 친구들인 경우 “와인이나 한 병 사다 주던가.”, “달달한 던킨 도너츠가 먹고 싶네.” 등등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이곳에선 구할 수 없는 ‘도시 물건’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필요한 것 없으니까 그냥 오세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필요한 것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와인이나 던킨 도너츠가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하지만 아무리 그냥 오라고 말해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여러 가지 선물을 가지고 오곤 한다. 가장 빈도 수 높은 품목을 꼽아보면 화장지, 음료수, ‘봉투’ 등이 있다.

화장지나 음료수는 문안한 선물이지만, 봉투는 받을 때마다 곤란하고 난감하다. 특별히 뭘 사야 할지는 모르겠고, 여럿이 우르르 왔다 가면서 혹시 폐 끼치는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 살림에 보탬을 주고 싶은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참 받기가 미안하고 껄끄럽다. 여기까지 왔다 가느라 쓰는 기름값만 해도 엄청날 텐데. 안 받겠다고 실랑이를 해보지만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받게 된다.  

기억에 남는 기발한 선물들도 많이 있다. 부모님이 갈비집을 운영하시는 후배 한 놈은 가게에서 고기 굽는 화로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는데,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아무튼 이 숯불구이 화로 세트는 지금도 손님들이 올 때마다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하는 물건이다.   

고기 굽는 철판을 손수 만들어서 가져오신 분도 계시다.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는데, 기름 빠지는 구멍까지 계산해서 용접해 만든 철판과 가스 연결구 한 벌을 기증하고 가셨다. 이 철판은 춘천에 사는 후배가 닭갈비를 싸들고 놀러올 때마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한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후배가 선물한 책들도 반갑고 고마운 선물이다. 이 후배에게 가끔 배추나 감자 등 농산물을 보내면 최근에 출판된 책들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몸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을 서로 맞교환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도시에서 온 손님은 아니지만, 근처에 사는 귀농자가 아주 멋진 선물을 들고 왔다. 서예와 서각 등에 솜씨가 있으신 분인데, 손수 쓰신 멋진 족자엔 ‘평화’라 씌어 있다. 우리 집에 꼭 필요한 게 뭔지 어찌 이리 잘 아셨을까. ^^아무튼 몇 년 동안 시골 생활을 해보니, 시골집 선물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물론 논밭에서 나는 농산물은 제외).

시골집들은 대부분 식구들도 많고, 먹거리를 같이 나눌 이웃들도 많고,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은 데다, 다양한 먹거리를 쇼핑할 만한 장소나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선물은 손님 그 자체다. 항상 같은 얼굴들만 보고 살다보니 손님이 오면 정말로 반갑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꼴딱 밤을 새는 경우가 생겨도 별로 피곤한 줄도 모른다. 사람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크다.